배경지식 없이 SNS로 정보 습득
오해 겹쳐 세상 비관적으로 인식
“불필요한 초조, 대화로 덜어야”
“트럼프가 큰 빨간 버튼을 눌러서, 우린 다 죽어버리고 말 거예요!”
영국 노팅엄셔주 워크솝의 클레어 애널스(42)는 운전하던 도중 아들 해리(7)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북 군사위협 발언에 대한 뉴스를 어디선가 듣고는 오해한 모양이었다. 아들의 표정이 너무나도 진지하고 심각해 클레어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쓸데없이 세상 만사를 걱정하는 게 더 이상 어른들만의 일이 아닌 세상이 됐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어른들이 공유하는 소식을 자유롭게 접하면서, 또래보다 영특한 집단을 중심으로 기우에 빠진 어린이들이 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근 “9~16세 어린이·청소년 3명 중 1명은 갈등, 분쟁 등 국제 문제로 인한 걱정에 잠겨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의 여론조사업체 차일드와이즈가 영국 어린이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벌인 결과다. 영국 어린이들의 대표적인 걱정거리는 전쟁, 테러리즘, 트럼프 대통령, 북한, 지구온난화 등이었다.
또 다른 연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5~18세 자녀를 둔 영국 부모 1,87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1% 응답자가 “자녀가 테러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영국 정신건강재단이 ‘유거브 폴’에 의뢰해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다. ‘우리 아이가 트럼프 대통령 때문에 걱정한다’는 비율은 33%,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 ‘핵전쟁’을 걱정한 비율도 각각 32%와 23%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영국 어린이들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큰 걱정에 빠진 까닭을 과거와 다른 정보습득 경로에서 찾고 있다. 차일드와이즈 연구소장 시몬 레깃은 “최근 어린이들이 TV 대신 스마트폰, 태블릿 PC, 노트북 등 개인화된 기기를 통해 정보에 접근하고 SNS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얻게 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어른과 달리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어린이들이 특정 사건에 대한 표면적 인식이나 반응에만 노출되면서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게 된다는 것이다.
아동심리전문가 카밀라 로잔 박사도 “우리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곤란한 문제들이 자녀들의 정신 건강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며 “특히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면서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걱정스럽고 두려운 뉴스들로부터 더 이상 아이들을 (시시때때로) 보호할 수 없기 때문에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의 시름을 덜어주려면 부모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임상심리학자 린다 블레어는 “부모들은 자녀들이 ‘애들이 꿈꾸는 현실’에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며 “(테러, 핵 전쟁 등 현재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불필요하게 초조해하지 않도록, 꾸준히 (해당 이슈에 대해)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조언했다.
카밀라 로잔 박사도 “어른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두려운 이슈 때문에 아이들이 충격을 받지 않도록, 부모들은 솔직하고 깊이 있게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그래야만 아이들이 맞닥뜨린 불안에서 벗어나고 안정을 찾게 된다”고 강조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권민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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