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권력자가 삼성 경영진 겁박
승계작업 부정청탁 존재 인정 못해”
정유라 승마 지원 일부만 뇌물 인정
영재센터 지원ㆍ재산국외도피 무죄
경영진 4명도 집유… 특검 “상고”
이재용(50) 삼성전자 부회장이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고 지난해 2월 17일 구속된 지 353일 만에 석방됐다. 정경유착과 부정한 청탁을 인정했던 1심 판단과 달리, 삼성을 강요의 피해자로 판단한 것이 선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 정형식)는 5일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장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는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 측에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삼성 관계자 모두 항소심 판결로 풀려나게 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상당수 혐의들에 대해 1심과 판단을 달리했다. 우선 형량을 좌우하는 재산국외도피·범죄수익은닉죄는 대부분 무죄로 뒤집혔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삼성 계열사 출연금 204억원은 물론 1심에서 유죄였던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여원에 대해서도 무죄로 판단했다.
이는 재판부가 ‘묵시적 청탁’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심 유죄 판결의 결정적인 근거였던 묵시적 청탁에 대해 재판부는 “삼성의 승계 작업이라는 포괄적 현안이 존재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승계 작업을 위한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핵심 혐의인 뇌물공여 인정액은 승마 지원 용역으로 코어스포츠에 실제 지급된 36억3,484만원에 국한됐다. 1심 인정액인 89억원에서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이다.
재판부는 이 같은 판단을 근거로 사건의 본질을 1심과 전혀 다른 시각으로 규정했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1심)이 아닌 “대한민국 최고 정치권력자인 박 전 대통령이 삼성그룹의 경영진을 겁박하고, 최순실 씨가 그릇된 모성애로 사익을 추구한 사건”으로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승마지원이 뇌물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대통령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해 뇌물공여로 나아간 것”이라고 봤다. 국정농단 사건의 주범은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이고, 이 부회장은 “수동적 뇌물 공여자”에 불과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다만 “승마지원 상당 부분이 뇌물에 해당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며 “대통령의 요구를 거절하는 것은 힘들었어도 아무런 기대도 없었다고 볼 수 없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특검은 재판 결과에 강하게 항의했다. “이 부회장을 피해자에 불과하다고 본 것은 면죄부를 주기 위해 사건의 본질을 왜곡한 것”이라며 “견해가 다른 부분은 상고해서 철저히 다투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검찰도 “법과 상식에 정면으로 반하는 판결”이라며 반발했다.
이 부회장은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되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 다시 한번 죄송하다”며 “1년간 나를 돌아보는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고, 앞으로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