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부회장, 당분간 외부활동 자제
조용히 그룹 현안 추스릴 듯
사회공헌 사업 강화 확실시
이사회 중심 투명성 확보 전망
AI분야 글로벌 M&A도 유력
삼성전자ㆍ삼성물산 주식은
석방 소식에 오름세로 돌아서
이재용(50)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아 353일 만에 자유의 몸이 됐다. 삼성은 1년 가까이 이어진 총수 부재 위기에서 벗어나게 됐지만 당분간 이 부회장 복귀로 인한 파격적인 변화는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 대법원의 마지막 판단이 남아있는 데다 집행유예에 반발하는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날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 계열사들이 내부적으로는 안도했지만 대외적인 반응을 자제했다. 이 부회장을 잘 아는 재계 인사는 이 부회장이 당분간 외부 활동을 최소화하며, 조용히 그룹 현안을 챙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부회장이 그간 재판 과정에서 밝힌 법정 진술로 향후 삼성에 대한 ‘큰 그림’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림은 ‘국민 기업’과 ‘투명 경영’으로 요약된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8월 2일 1심 결심공판 최후 진술을 통해 “삼성의 성취가 커질수록 국민과 사회가 삼성에 거는 기대가 더 커졌다”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점을 인정했다. 작년 12월 27일 2심 최후진술에서는 “좋은 부모를 만나 좋은 환경에서 최상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그동안 받은 혜택을 사회와 나눌 수 있는 참된 기업인으로 인정받고 싶다”고 토로했다.
지난달 31일 삼성전자 이사회가 소액투자가 가능하도록 삼성전자 주식을 50대 1로 액면분할한 것은 이런 법정 진술과 무관하지 않으며, 삼성전자가 국민 기업이 되기 위한 첫 걸음으로 읽힌다.
이 부회장은 책임경영을 위해 2016년 10월 등기이사가 됐고 옥중에 있던 지난 1년도 사내이사 네 자리 중 한 자리를 유지했다. 삼성전자 정관에는 집행유예를 받을 경우 사내이사에서 물러난다는 규정이 없어, 이 부회장이 앞으로 경영 전반을 총괄하는 데 아무 걸림돌이 없다. 다만 반도체 휴대폰 생활가전 등 사업부문은 전문경영인들에게 일임할 것으로 보인다. 지분율 17%로 최대주주인 삼성물산 경영도 마찬가지다. 이 부회장은 재판 과정에서 “나는 삼성전자 소속이고 전자 계열사 업무만 해왔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의 단기 목표는 인공지능(AI) 분야의 글로벌 기업 인수합병(M&A) 확대가 유력하다. 삼성에서는 2016년 말 미국 전장 업체 하만을 인수한 뒤 대규모 M&A가 실종됐고, 글로벌 기업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AI 분야도 임원급 인사 한 두 명을 영입했을 뿐 정체된 상태다. 하만 인수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이 부회장은 구속 전에도 해외 M&A에 주력했다. 신동빈 롯데 회장이 집행유예 선고 뒤 일본 출장을 간 전례로 볼 때 이 부회장의 글로벌 행보에 별 무리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관계자는 “옥중에서 중요한 이슈는 대부분 챙겼을 것이고, 시급한 것은 1년간 끊어졌던 글로벌 거물 인사들과의 관계 회복”이라고 밝혔다.
삼성은 신뢰 회복을 위해 사회공헌 사업을 강화할 것이 확실시된다. 서울대 동양사학과 선배이자 측근인 이인용 사장을 삼성봉사단장에 임명한 것도 이를 위한 포석이다. 외부 지원으로 큰 곤욕을 치른 만큼 사회공헌에서도 이사회를 중심으로 투명ㆍ공정성 확보에 더 노력할 걸로 보인다. 평소 이 부회장은 법적 책임이 명확한 이사회를 투명경영의 핵심으로 강조해왔다.
일각에선 이건희 회장이 삼성 창립 50주년(1988년 3월 22일)을 맞아 ‘제2 창업’을 선언한지 30년 만에 이 부회장이 다음달 창립 80주년을 기해 '제3 창업’을 선언할 거란 예상도 나온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최지성 전 부회장과 장충기 전 사장 등 미래전략실 주요 인사들의 향후 역할에 대해서 삼성 측은 “아직 아무것도 확정된 건 없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주식시장에서 장 초반 한때 2.5% 이상 약세를 보이던 삼성전자느 이 부회장 석방 소식에 전날보다 0.46% 오른 239만6,000원에 마감됐다. 삼성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삼성물산도 오전 중 2%대 하락세에서 장 막판 오름세로 돌아서 2.14% 상승 마감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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