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목상 국가수반… “최대한 예의”
‘개막식 외교 무대 활용’ 관측도
단원 3명 누구냐가 오히려 관건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남측에 파견할 고위급 대표단의 단장으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지정한 건 올림픽 성공을 위해 돕겠다고 공언한 만큼 최대한 성의를 표시하려는 취지로 읽힌다. 여기에 평창올림픽 개막식을 외교 무대로 활용해보겠다는 의지도 반영됐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4일 밤 북측이 알려온 고위급 대표단장인 김 상임위원장은 북한에서 명목상이나마 ‘국가수반’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북한 사회주의 헌법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은 국가를 대표하며 다른 나라 사신의 신임장, 소환장을 접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북한을 대표하는 얼굴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런 인물을 남측에 보냄으로써 자신이 신년사에서 밝힌 평창올림픽 성공에 대한 언급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우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증명하려 했으리라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김 상임위원장은 남쪽을 방문한 경험은 없지만 2000년 정상회담 때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에 앞서 그를 만나 먼저 회담했고, 2007년에도 정상회담에 앞서 노무현 대통령이 그를 면담했다. 따라서 이번에 김 상임위원장이 내려와 문재인 대통령과 별도로 만난다면 일종의 준(準) 정상회담 성격이라는 분석도 일각에선 제기된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연합뉴스에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내려올 수 없는 상황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대표단장으로 보냄으로써 의전적으로 최대한 예의를 갖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갈수록 심화되는 외교적 고립 상황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돌파하겠다는 의도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평창올림픽 때는 21개국 26명의 정상급 인사들이 한국을 찾는다. 일단 개막식에 앞서 문 대통령이 주최하는 리셉션에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한정(韓正)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 등도 참석할 예정이다. 김 상임위원장이 자연스럽게 이들과 접촉할 기회가 있을 수도 있다.
엘리트 외교관 출신인 김 상임위원장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 등 북한 우방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대표단장으로 참석해 정상 외교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특히 그는 1983년부터 1998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 오를 때까지 15년 간 우리의 외교장관 격인 외교부장을 지내 외교 활동에도 정통하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세습된 북한의 모든 정권에서 자리를 잃지 않고 높은 정치적 위상을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김 상임위원장은 가장 안정감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일부에서는 그가 제재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 고려됐을 거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김 상임위원장이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큰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그런 만큼 누가 김 상임위원장과 함께 남쪽을 찾을지가 오히려 관건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북한은 김 상임위원장이 단장이라고 통보하면서 대표단은 단원 3명, 지원인원 18명으로 구성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신원에 대해선 통보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을 맡고 있는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이 대표단 단원으로 김 상임위원장을 수행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대외적으로는 김 상임위원장이 2인자이지만 북한 내 실질적인 2인자는 최 부위원장이 꼽히고 있다. 최 부위원장은 2007년 정상회담 때 노무현 대통령을 군사분계선(MDL)에서 영접했고 2014년에는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번 올림픽이 남측에서 여러 국가가 참가해 이뤄지는 행사인 만큼 북한에서 대남사업을 총괄하는 김영철 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나 대외관계를 총괄하는 리수용 당 부위원장 겸 국제부장이 대표단에 포함될 가능성도 있다. 김연철 교수는 “이번 북한 대표단의 의전적 측면은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방남으로 어느 정도 충족됐다”며 “아마도 대표단의 내용적 측면은 단원으로 올 3명이 누구냐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