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혜영 의원 부친 농장, 남승우 前대표가 기업화
‘바른 먹거리’로 年 매출 2조 돌파
고배당ㆍ가격인상 논란 진통 딛고
이효율 대표에 경영권 맡겨 신선한 충격
작년 영업이익 40% 증가 532억
“세계 최고경영자(CEO) 평균 나이가 65세다. 나이가 들면 기민성과 기억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도 본인이 잘할 수 있다고 하는 건 착각이다. 전문경영인이 아들보다 훨씬 유능하기 때문에 가족 승계를 하지 않은 것이다.”
남승우 전 풀무원 대표이사 겸 총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말 33년 만에 퇴임하면서 가족이 아닌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겨 재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비상장기업은 가족경영이 유리할 수 있지만 상장기업은 전문경영인이 경영권을 승계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이미 3년 전부터 65세에 경영권을 전문경영인에게 넘기겠다고 공언해온 터라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었지만, 소신과 약속을 실행으로 옮긴 그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풀무원 지분 57.3%를 보유하고 있는 남 전 대표는 은퇴 후 38만주(약 640억원)를 비영리재단인 풀무원재단에 기부하겠다고도 했다. 풀무원 전체 주식의 10%에 이르는 규모다.
남 전 대표의 퇴임에 이어 이효율 대표가 새해 초 신임 총괄 CEO로 업무를 시작했다. 그는 취임 직후 신년인사에서 “새로운 미래를 맞이해 더욱 활력 있고 역동적인 브랜드로, 한국을 넘어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젊은 브랜드로 거듭날 수 있도록 혁신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 대표는 1983년 풀무원 1호 사원으로 입사해 34년간 영업, 마케팅, 홍보, 상품기획, 생산, 해외사업 등 다양한 업무를 지휘하며 현장 경험을 쌓은 베테랑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풀무원의 매출이 계속 꾸준히 늘고 있는데도 영업이익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이유는 해외사업의 부진”이라며 “취임 이후 우선 해외 법인의 영업손실을 줄이는 데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두부ㆍ나물 시장 공략하며 고속성장
풀무원의 남다른 경영권 승계에는 풀무원만의 독특한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풀무원의 모태는 남 전 대표의 친구인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부친 고 원경선 원장이 한국전쟁 직후 경기 부천시에 만든 풀무원 농장이다. 농장은 영리를 목적으로 한 사업장이 아니라 이웃사랑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로 시작했다. 전쟁으로 고아가 된 청년과 어린이들, 갈 곳을 잃은 노인들이 자급자족할 수 있는 공동체로서의 농장. 원 원장은 땅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바른 농사를 짓기 위해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전통적인 퇴비를 사용한 유기농법을 도입했고, 그가 평생을 실천해온 생명존중과 이웃사랑의 정신은 풀무원의 철학인 ‘바른 먹거리’의 뿌리다. 풀무원이라는 이름은 대장간에서 화덕에 불을 피울 때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를 가리키는 ‘풀무’와 농장을 뜻하는 ‘원’을 붙인 것으로 어릴 적 신학도를 꿈꿨던 원 원장이 농장에 온 사람들을 신앙 공부와 농사일로 풀무질해서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로 만들겠다는 뜻으로 지었다.
풀무원이 기업으로 변신한 것은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전력으로 경찰에 쫓기던 원 의원이 1981년 수배가 해제된 뒤 생계를 위해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시작한 ‘풀무원 무공해 농산물 직판장’에서 출발했다. 일천한 사업 경험과 일정치 않은 유기농산물 수요ㆍ공급으로 인해 매달 빚만 쌓여가던 중 당시 현대건설에 재직 중이던 남 전 대표가 고교ㆍ대학 동창인 원 의원의 권유로 투자와 공동 경영에 나서면서 1984년 풀무원효소식품이 출범했다.
남 전 대표는 1987년 원 의원이 풀무원을 떠나 정계에 입문하면서 홀로 풀무원을 맡게 됐다. 풀무원은 깔끔하게 포장된 두부와 콩나물을 서울의 대형 백화점에 납품하는 고급화 전략으로 성장해나갔다. 중산층 소비자를 공략하는 데 성공하자 전국 백화점ㆍ슈퍼마켓에도 속속 입점할 수 있었고, 장류, 생면, 묵 등으로 품목을 확장하며 몸집을 키운 회사는 1995년 ㈜풀무원으로 상호를 변경한 뒤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 법인 설립 첫해 매출 7,800만원에 불과하던 풀무원은 1994년 1,000억원을 넘어섰고, 그로부터 22년 만인 2016년 매출 2조원을 돌파하기에 이른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유기농, 웰빙이라는 단어가 생소하던 무렵부터 ‘바른 먹거리’를 내세우며 한발 앞선 아이디어로 틈새시장을 공략한 것이 풀무원의 성공 비결”이라고 말했다.
국내사업 발목 잡던 해외 실적 개선 기대감 커져
남 전 대표가 최대주주인 지주사 풀무원은 주력 계열사인 풀무원식품을 비롯해 풀무원건강생활, 이씨엠디, 푸드머스, 풀무원다논, 풀무원더스킨, 찬마루유통, 로하스아카데미, 씨디스어소시에이츠 등 총 28개 회사(지난해 3분기 기준)를 연결 대상 종속회사로 두고 있다. 연간 매출 규모는 구내식당 등을 운영하는 이씨엠디가 4,000억원대,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등을 만드는 풀무원건강생활이 1,500억원대, 유제품을 제조하는 풀무원다논이 500억원대다. 매출 4,0000억원대의 식자재 유통회사 푸드머스는 풀무원식품의 자회사로 편입돼 있다. 상장기업은 지주사 풀무원이 유일하다. 남 전 대표의 아들 남성윤 풀무원USA 마케팅팀장은 2017년 3분기 기준으로 풀무원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친환경 식품 회사 올가홀푸드의 지분 94.95%를 보유하고 있다. 올가홀푸드의 2016년 매출액은 1,016억원으로 풀무원의 연결 대상은 아니다.
풀무원은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10.2% 늘어난 2조2,381억원, 영업이익은 40.3% 증가한 532억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매출의 70% 이상은 풀무원식품에서 나온다. 풀무원식품은 지난해 매출 1조6,300억원, 영업이익 305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매출 증가에 따라 2015년 280억원까지 올랐던 영업이익이 이듬해 203억원으로 27% 이상 떨어지며 우려를 샀으나 지난해 52% 증가하며 회복세를 보였다.
풀무원식품 매출의 기반은 시장점유율 40%대로 1위를 지키고 있는 두부와 나물 등 신선식품이다. CJ제일제당에 이어 27% 정도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생면 부문의 매출도 늘고 있다. 시장 진입 20년이 지나도록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라면 사업도 업계 5위로 진입하는 등 점점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 ‘자연’ ‘건강’이라는 콘셉트를 버리고 ‘맛’에 집중하며 브랜드 이름을 ‘자연은 맛있다’에서 ‘생면식감’으로 바꾼 결과다. 풀무원식품이 전략을 바꿔 내놓은 ‘육개장칼국수’는 출시 6개월 만에 2,000만개를 판매하는 등 라면 사업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풀무원은 올해 생면식감 브랜드로 지난해 400억원에서 2.5배 증가한 1,000억원 이상 매출을 목표로 세웠다. 최근 가정간편식(HMR) 시장이 팽창하면서 이 분야에서 신상품을 속속 출시하고 있는 풀무원의 매출 증대에도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성장에도 풀무원은 2015, 2016년 물류센터 화물운수업자들과의 갈등, 두부 가격 인상 논란, 계열사 직원들 간의 폭행 사건 등으로 진통을 겪었다. 특히 미국 중국 일본 등에서 펼치고 있는 두부 및 식품 사업의 부진이 국내 사업의 발목을 잡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풀무원식품의 자회사인 해외법인들의 영업손실은 2014년 229억원에서 2015년 388억원, 2016년 416억원으로 불었다. 해외실적 부진은 풀무원식품 상장의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했으나 지난해 손실 폭이 다소 축소됨에 따라 상장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풀무원 관계자는 “해외사업은 초기 투자 비용이 많아 적자가 이어지고 있는데 사업 실적이 개선됨에 따라 영업손실 폭은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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