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오후 직장인 김모(39)씨는 가족들을 차에 태우고 경기 파주시의 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옆에서 졸던 남편이 “여보, 저기 경찰! 속도 줄여”하면서 다급하게 외쳤다. 차가 경찰관 옆을 지나칠 때쯤 김씨가 웃으며 말했다. “에이, 마네킹이잖아.” 불과 20~30m 전방은 급회전 구간이었다.
마네킹 교통경찰, 일명 ‘마 순경’은 급증하는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지난해 8월 파주경찰서가 전격 도입하면서 이 지역 도로 곳곳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교하, 운정 등 신도시 인구가 늘고 문발, 탄현 등 산업단지에 기업들의 입주가 이어지면서 지난해 1~7월 파주 지역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25명에 달했다. 이런 추세라면 2016년 사망자 수 34명을 훌쩍 넘길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서울(605㎢)과 경기 안양시(58㎢)를 합친 것보다 넓은 파주(673㎢)의 도로마다 교통경찰을 다 배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계속되는 대책회의 중 서장이 “과속, 신호위반을 막기 위해 마네킹이라도 세워놓자”는 제안을 내놨고 “밤에는 불봉(경광봉)을 켜는 게 좋겠다”, “낮에는 선글라스를 씌우자”는 등 직원들의 아이디어가 보태졌다. 파주서는 개당 20만원씩 마네킹 20개를 구매해 직원들이 입던 교통경찰 옷을 입혀 사고가 잦은 도로에 세웠다.
결과는 대만족. 파주서에 따르면 ‘마 순경’을 배치한 지난해 8월 16일부터 올해 1월 말까지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9명으로 전년 동기(16명)대비 44%나 줄었다. 올해 1월만 놓고 보면 교통사고 사망자가 단 1명도 발생하지 않아 지난해 1월 사망자 4명과 비교했을 때 눈에 띄는 효과를 보이고 있다. 같은 기간 부상자 수는 321명에서 200명으로 줄었다.
이 같은 ‘마 순경’의 성공 비결은 단순히 도로에 세워놓는 것이 아니라 이 지역을 오가는 운전자들이 마네킹에 익숙해지지 않게 운영하는 데 있다. 과거에도 도로에 마네킹 경찰관을 놓아둔 적이 있었지만 정작 교통사고 예방 효과가 크지 않았던 점을 참고했다. 담당 경찰관들은 3, 4일마다 마네킹 위치를 옮기고, 마네킹이 있던 자리에 진짜 경찰관을 배치하거나 과속ㆍ신호위반 단속 카메라를 설치하는 식으로 ‘마 순경’의 배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교통사고 예방의 1등 공신인 만큼 ‘마 순경’에 대한 대접도 좋아졌다. 선글라스, 경광봉을 가져가거나 마네킹 팔을 비틀고 부러뜨리는 일이 이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하덕재 파주서 경비교통과장은 “배치 초기만 해도 ‘마네킹으로 교통사고가 줄어들겠느냐’며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우리 지역에 더 설치해달라’는 요청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마 순경’의 교통사고 예방 효과가 전해지면서 마네킹 교통경찰을 도입하는 경찰서도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글ㆍ사진=허정헌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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