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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을 만든 어머니 故 장명자 씨를 떠나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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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을 만든 어머니 故 장명자 씨를 떠나 보내며

입력
2018.02.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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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수 일은 제대로 깎지 못한 손톱은 길게 웃자랐고 때에 절어 새카맸다. 지인 한 명이 그 손을 붙잡고 속상한 듯 울먹였다. “아버지, 손이 이게 뭐에요.”

2월 1일 경기 수원 아주대 병원 장례식장에서 박지성(37) 아버지 박성종 씨는 아내 영정사진을 보며 “날 보면서 저렇게 웃고 있는데 내가 저 사람을 어떻게 보내나”라고 눈물을 쏟아냈다.

박지성 어머니 장명자 씨는 지난해 12월 22일 아들이 머물고 있는 런던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치료를 받다가 해를 넘긴 지난 1월 11일 유명을 달리했다. 사망 처리와 시신 운구에 시간이 걸려 1월 31일에야 귀국했고 뒤늦은 장례를 치렀다. 부지불식간에 어머니를 잃은 박지성 얼굴은 초췌하다는 표현조차 사치처럼 느껴질 정도로 ‘반의 반쪽’이 돼있었다. 지인들은 “저렇게 야윈 모습은 고등학생 때 이후 처음이다”며 발을 굴렀다.

박지성 대한축구협회 유스전략본부장. 대한축구협회 제공
박지성 대한축구협회 유스전략본부장. 대한축구협회 제공

박지성을 아는 사람들은 “지금의 박지성을 만든 건 어머니의 공덕”이라고 입을 모은다.

장 씨는 넉넉하지 않은 살림살이에 정육점을 하며 아들을 극진히 뒷바라지했다. 아버지 박성종 씨는 아들을 보호하느라 악역을 자처하는 바람에 원성을 사기도 했다. 대신 어머니 장 씨가 아들이 무명선수였을 때나 국민 스타로 올라섰을 때나 한결같이 주변 사람들을 보살피고 챙겼다. 박 씨는 “나를 욕하는 사람은 많아도 아내 욕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애통해 했다. 박지성이 2002년 한일월드컵 직후 네덜란드 프로축구 PSV 아인트호벤에 입단해 처음 유럽에 진출했을 때 특파원, 축구 담당기자, 축구인, 정치인 등 수 많은 사람이 그의 집을 찾았다. 박 씨는 “우리 집에 수 백 명이 왔다 갔는데 아내가 손수 대접한 밥을 안 먹고 간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했다.

런던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뒤 장 씨는 생명이 위독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1월 13일 박성종 씨 부부가 함께 귀국하기로 돼 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귀국 전날 간단한 시술을 받으면 된다고 해서 병원에 들렀다가 변을 당했다. 갑작스런 죽음의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영국 검찰에서 부검을 요청해 박지성은 돌아가신 어머니 가슴을 또 한 번 여는 아픔을 감내했다. 현재 의료사고 의혹이 일고 있어 앞으로 좀 더 조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박지성 측은 장례를 조용히 치르고 싶어 했다. 언론사의 요청이 많아 귀국 일정만 알렸을 뿐 부고 기사도 내지 않았고 조문객들에게 부의금도 안 받았다. 하지만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빈소를 찾았다. 이날 오전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과 홍명보 전무 등 협회 임직원이 다녀갔고 저녁때는 김호곤 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왔다. 설기현과 송종국, 이민성, 현영민, 김병지 등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주역들의 모습도 보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뛸 때 박지성(오른쪽)과 에브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홈페이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뛸 때 박지성(오른쪽)과 에브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홈페이지
유럽에서 직접 날아와 박지성 옆을 끝까지 지키고 운구까지 맡은 파트리스 에브라. 에브라 인스타그램 캡처
유럽에서 직접 날아와 박지성 옆을 끝까지 지키고 운구까지 맡은 파트리스 에브라. 에브라 인스타그램 캡처

박지성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된 이들은 수원공고 동창들이었다. 지금은 대부분 운동을 그만뒀지만 고등학교 3년 내내 박지성과 공을 차며 우애를 다졌던 이들은 새벽 늦게까지 함께 했다. 이를 지켜 본 사람들은 “그래도 친구들 옆에 앉으니 지성이 얼굴이 조금 펴진다”며 안타까워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뛸 때 박지성과 가장 친했던 프랑스 전 국가대표 파트리스 에브라도 유럽에서 기꺼이 날아왔다. 에브라는 2일 오전 고인의 시신을 장지로 옮길 때 운구까지 맡아 박지성 옆을 끝까지 지켰다.

박지성 아버지 박성종 씨가 아내를 떠나보내며 손수 쓴 시. 수원=윤태석 기자
박지성 아버지 박성종 씨가 아내를 떠나보내며 손수 쓴 시. 수원=윤태석 기자

장례식장 한 쪽에는 박성종 씨가 아내를 보내며 손수 쓴 시가 한 편, 말 없이 놓여 있었다.

‘거칠고 불안하기만 했던 모진 삶이 부끄러워 차마 먼저 내밀지 못했던 용기 없는 내 손을 따뜻한 손길로 기꺼이 잡아둔 당신… 당신으로 인해 가난했지만 마음은 부유했고 고단했지만 기쁘고 따뜻했습니다. 혼자 가는 길이 외롭지 않기를... 미안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내 삶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평생 남편 박성종이 사랑하는 천사 같은 장명자 여사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수원=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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