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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분쟁지역] IS 피해 떠난 고향 돌아오니… 폭탄과 병마가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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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분쟁지역] IS 피해 떠난 고향 돌아오니… 폭탄과 병마가 기다려

입력
2018.02.02 18:0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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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고통 끝나지 않는 이라크

이라크 모술의 알칸사 병원에서 생후 17일된 아기가 의료장비에 의존한 채 치료를 받고 있다. 지난해 10월 식도와 기도가 붙은 채 태어난 이 아기는 호흡장애로 생명이 위태로웠다. 중환자실에서 각종 수술과 치료를 쏟아 부었지만, 아기는 끝내 한달 만에 숨을 거뒀다. 국경없는의사회 제공
이라크 모술의 알칸사 병원에서 생후 17일된 아기가 의료장비에 의존한 채 치료를 받고 있다. 지난해 10월 식도와 기도가 붙은 채 태어난 이 아기는 호흡장애로 생명이 위태로웠다. 중환자실에서 각종 수술과 치료를 쏟아 부었지만, 아기는 끝내 한달 만에 숨을 거뒀다. 국경없는의사회 제공

지난 수년 간 이라크 시민들은 이슬람국가(IS)에게 점령 당한 영토를 탈환하기 위해 분쟁을 일상처럼 견뎌 왔다. 이 와중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영문도 모른 채 총탄을 피해 무작정 집을 떠나 낯선 도시를 전전하는 아이들이다. 이들은 부상을 입거나 질병에 시달려도 열악한 의료시설 탓에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숱한 죽을 고비를 넘기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향에 돌아오더라도 여전히 전쟁보다 더 위험한 현실을 마주하며 살아 가고 있다.

이라크에서는 2014년부터 본격화 한 내전으로 570여만명 어린 아이와 어른들이 집을 떠나 총격으로부터 몸을 피할 곳을 찾아 헤매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 피난을 떠났던 이라크인 280만명 가량이 집으로 되돌아 왔지만, 290만여 명은 여전히 집 없이 떠도는 신세다.

일부 지역에서 총성이 멈췄지만, 일상화된 분쟁으로 사실상 준 전시 상태인 이라크의 현실은 처참하기 그지 없다. IS 손아귀에서 벗어나더라도 이미 도시는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할 만큼 심각하게 훼손돼 폐허로 변했다. 특히 병원 등 보건 시설이 많이 파괴됐고 의료 물품이나 보건 인력도 부족해 수천 명 환자들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모술 서쪽에서 일하는 국경없는의사회 코디네이터 미리암 버거는 “사람들이 고향으로 되돌아오면서 환자들이 많아졌는데, 더러운 물을 마신 탓인지 내장이 감염된 경우가 급증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서 피부병과 발진 증상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터진 파이프 주변 구정물에서 놀다가 감염이 된 것 같다”며 “전반적으로 위생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전투가 끝난 지역이라도 여전히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전쟁이 남긴 위장 폭탄인 부비트랩이나 터지지 않은 폭탄 등에 피해를 입어 부상당하는 일이 다반사다. 지난 해 말 이라크 북동부 모술 서쪽 지역에 전투가 종료되자마자 처음 마을로 돌아온 한 가족에겐 안도감을 느낄 새도 없이 또 다른 비극이 벌어졌다. 10대 남자 형제 두 명이 집 안에 있던 폭탄을 치우려다 거실이 모두 폭파돼 변을 당한 것이다. 모술 내 다른 마을에서도 여자 아이가 폭탄이 든 장난감 통을 가지고 놀다가 즉사했고 아이의 오빠 또한 부상 당하는 일도 발생했다.

식량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아 생명이 위협당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식량 부족의 가장 큰 타격은 역시나 어린 아이들과 갓난 아기들에 가해진다. 지난 해 말 모술 서쪽 지역의, 우리가 있던 ‘알 칸사’ 병원으로 이송돼 오는 사람 중 상당수가 영양실조 상태였다. 며칠 째 아무것도 먹지 못한 환자들의 상태는 심각했다.

사람들이 죽어가는 전쟁터에서 고귀한 생명을 만나는 일 역시 쉽지 않다. 산모와 태아, 의료진 모두 사투를 벌여야만 가능한 일이다. 제대로 된 의료시설은 꿈도 꿀 수 없다. 난민들이 모여든 천막 캠프의 흙 바닥에서 출산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산사들은 아무 도움 없이 오로지 맨손으로만 위기를 헤쳐나가야 한다. 천막 캠프에서 출산을 도운 한 조산사는 “힘든 출산을 돕고 나면 손과 팔을 아예 쓰지 못할 정도로 힘들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국경없는의사회는 최근 모술 북부 도미즈 캠프에 병원을 지었다. 이제 더 이상 텐트 바닥에서 아이를 낳지 않아도 된다. 병원에서 안전하게 분만할 수 있고, 출산 전후로도 의료진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라크인 중 이런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일단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병원과 보건소 시설 자체가 부족하다. 내전을 겪으면서 건물이 아예 폭파됐거나, 형체를 유지하고 있더라도 인력과 물자가 부족해 문을 닫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이라크인들은 아주 간단한 치료가 필요하더라도 실제로 문을 연 병원이나 보건소를 찾아 헤매다가 포기하기 일쑤다. 문제는 이런 작은 질병들을 방치할 경우 심각한 질환으로 커져 생명을 위협한다는 점이다.

천만 다행으로 문을 연 병원을 찾더라도,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환자들은 병원에 들어가기 위해서 입장료 명목으로 약 2,000 디나르(2,000원)를 지불해야 한다. 우리에겐 큰 금액이 아니지만 피난 후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에겐 그렇지 않다. 자녀가 아파 병원에 가야 할 경우, 이 돈이 없어서 병원에 데려가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래서 이들뿐 아니라 전세계 어느 곳에서도 국경없는의사회는 무료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손녀딸은 굶어 죽었고 손자도 땅에 묻었다. 손자는 박격포에 맞아 숨졌다. 둘을 같이 마당에 묻었다.”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에 막 도착한 한 노인은 슬픔에 잠긴 채 힘 없이 이렇게 말했다. 이처럼 전쟁이 남긴 수많은 상처는 가장 연약한 아이들에게 큰 고통을 주고 있다. 제대로 된 도움도 못 받은 채 말이다.

이라크 내전은 아이들에게 너무 잔혹한 상처를 안겨주고 있다. 이제 이 아이들이 국제사회로부터 더 많은 지지와 지원, 돌봄을 받아 전쟁의 폐허 속에 잃어버린 것들을 재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티에리 코펜스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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