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오보를 낸 특정 언론사에 ‘당사 출입 금지령’을 내렸다. 공당으로선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한국당은 그러면서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6ㆍ13 지방선거를 앞둔 ‘언론 길들이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당은 2일 당 공보실 명의로 보도자료를 내어 이날 MBN이 보도한 뉴스를 거론하며 “악의적인 허위사실”이라고 반박했다. 뉴스는 류여해 전 한국당 최고위원이 “홍준표 대표에게 수년간 성희롱 당해왔다”고 주장한 내용을 다뤘다. 한국당은 “1야당 대표를 떠나 한 인간에 대한 인격 살인”이라며 “파렴치하고 악랄한 가짜 뉴스를 보도하는 MBN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을 했다”고 덧붙였다.
또 “즉시 당사의 MBN 부스를 철거하고 무기한 당 출입을 금지시키겠다”며 “한국당 취재를 불허하고 당 소속 국회의원, 당직자 그리고 당 추천 패널들의 출연도 전면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당은 과거에도 주요 당직자가 특정 언론의 논조를 문제 삼아 비공식적으로 의원들에게 ‘인터뷰 자제령’ 등을 내린 적은 있다. 그러나 당 대표와 공보실이 공식적으로 출입 금지ㆍ취재 거부 조치를 한 건 이례적이다. 과거 이회창 신한국당(한국당 전신) 총재도 1997년 대선 직전 언론사 출입기자들과 만찬 자리에서 자신에게 비판적인 기사를 쓴 기자들을 가리켜 “창자를 뽑아버리겠다”고 발언해 물의를 빚었다. 하지만 출입을 금지 시키거나 취재를 거부하진 않았다.
한국당은 이번 조치를 두고 “사회정의 실현과 언론개혁 차원”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한국당은 330만 전 당원의 MBN 시청 거부운동을 비롯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가짜뉴스와의 투쟁 수위를 높여가겠다”고 밝혔다.
앞서 홍준표 대표는 이날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성희롱 한 일도 없고 36년 공직 생활 동안 여성스캔들 한번 없는 나를 이런 식으로 음해하는 가짜 언론은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다”며 MBN 출입 금지 조치를 시사했다.
그리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홍 대표는 이날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신임 당협위원장 임명장 수여식에서 MBN 취재진을 향해 “오늘 부로 당사 출입금지”라며 “그리고 부스도 빼세요”라고 말했다. 이어 “허위기사나 (보도)하는 (언론)사는 취재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홍 대표는 거듭 “MBN은 기자들 철수하라. 취재에 불응한다. 이젠 안되겠다”고 말했다.
발단은 류여해 전 최고위원의 성희롱 주장을 담은 기사 때문이다. MBN은 전날(1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의 ‘검찰 내 성폭력 사건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한 류 전 최고위원의 주장을 인용한 기사를 이날 오전 8시 43분 온라인에 송출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 25분여 뒤 기사를 내렸다. MBN은 정정보도문도 발표해 “류 전 최고위원이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고 발언한 것은 사실이나 ‘수년간’ 당해왔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밝혀왔다”며 “오전 9시 18분 기사는 삭제됐다”고 밝혔다. 또 “기사 내용을 제목으로 줄이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법적 실수에 따른 것으로 확인했다”며 “잠시나마 해당 기사를 읽은 독자는 물론 류 전 최고위원과 홍준표 대표에게 심려를 끼친 점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고 덧붙였다.
오보 정정 사태와 별개로 홍 대표의 출입 금지 조치가 적절한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원용진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언론의 취재권을 막는 건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라며 “특정 방송사가 아닌 모든 언론의 역할을 무시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고 지적했다. 원 교수는 “언론을 인정하지 않겠다면, 언론도 펜과 카메라를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 아니냐”며 “한국당의 과도한 조치에 향후 출입사들이 어떻게 대응할지도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도 “한 번 오보를 내면 당사자가 입는 피해가 크니 일단 언론사가 먼저 사과하는 게 맞다”면서도 “한국당의 출입금지 조치는 너무 과격한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당 대표가 나서서 언론과 ‘전면전’을 선포하는 모양새를 두고도 비판이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의도를 가진 보도인지, 사고인지, 사후 조치는 적절했는지를 두루 살펴야 한다”며 “사고에, 그것도 당 대표가 나서서 과잉 대응을 하면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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