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의 진가는 외국인들이 더 잘 아는 것 같아요.”
정기은(54) 대구광역시여성단체협의회 회장은 올해 처음으로 신년 타종식이 참여했다. 이날 행사는 평창올림픽 성화봉송과 연계해 예년보다 더 성대하게 치러졌다. 타종식 후에는 시청에서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까지 성화를 옮긴 가수 이승철씨의 공연이 있었다.
이날 정 회장은 한복을 입고 참가해 이목을 끌었다. 한복 덕에 외국인 친구도 한명 사귀었다. “한복이 너무 예쁘다”면서 먼저 말을 걸어왔다. 통성명을 해보니 지난해 9월 주한미군 제19지원사령관으로 부임한 마이클 러셀 준장의 부인이었다. 타종식 내내 러셀 부인과 대화를 나누었고, 공연 순서에서도 나란히 서서 이승철씨가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 설명해줬다.
정 회장의 한복 사랑은 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결혼할 때 예복으로 입은 뒤 옷장에 넣어뒀다가 자녀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예절교실이 열렸을 때 다시 꺼내서 입기 시작했다. 한복의 진가는 외국에서 발견했다. 처음엔 결혼 후 넉넉해진 몸매를 가릴 겸 입고 나갔는데 갈 때마다 칭찬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한복과 사랑에 빠졌다.
“일본인들은 기모노를 입고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한복은 드문 편이에요. 한국 문화의 꽃이 한복이라는 신념으로 늘 한복을 입고 참가했어요.”
늘 주변에 사람들이 북적였다. 정 회장은 “한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사진을 찍다 보면 자연스럽게 행사의 주인공이 되기 일쑤였다. 특히 행사 주최 측에 늘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5월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북아 관광학회 및 포럼에 참가했을 때도 리셉션장에 한복을 입고 나갔다. 참가자 중 유일하게 한복을 차려 입었다. 포럼에서 한국 대표 ‘대구의료관광의 발전’이라는 기조연설을 하기도 했던 터라 더욱 주목을 받았다. 주최 측에서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한복을 입고 가면 그 정성을 귀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의상만으로도 점수를 따고 들어가니까 모든 일이 술술 풀리기 마련이었습니다.”
지난해 대구시여성단체협의회 회원들과 함께 타이완 타이베이시를 방문했을 때도 모두 한복을 챙겨갔다. 타이완한인회 부녀회와 가진 교류 행사에 전원 한복을 입고 참여해 부채춤까지 췄다. 정 회장은 “타이완 유명 사진작가가 미친 듯이 셔터를 눌렀고, 한인회 회원들 중에 눈물을 글썽이는 이들까지 있었다”면서 “지금 생각해도 가슴 뭉클한 기억”이라고 말했다.
1월16일에 인터불고 호텔에서 열린 대구시여성단체협의회 신년회 행사에 러셀 부인이 참여했다. 그것도 한복을 입고 왔다.
“한복을 꼭 입고 싶다고 해서 입고 참가하라고 했어요. 한복이 외교복이란 생각까지 드네요.”
정 회장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복에 더 익숙해졌으면 하는 바람을 밝혔다. 특히 설날은 하루만이라도 온 국민이 한복 입는 날로 정했으면 한다는 아이디어도 냈다.
“요즘은 전세계가 SNS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저마다 개성 있는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어서 올리면 한국 홍보가 톡톡히 될 것 같아요. 까치설날이 아니라 한복설날로 정하고 한국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는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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