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총리 “교육ㆍ복지부 원칙 합의”
순위 선정에 뚜렷한 기준 없고
빈 교실 개념도 달라 갈등 재연 우려
정부가 초등학교 내 빈 교실을 학교 교육이나 병설유치원 설립 등에 우선 활용하되 돌봄 서비스나 국공립 어린이집 등으로도 활용하기로 원칙을 세웠다. 그간 초교 빈 교실에 국공립 어린이집을 설립하는 것을 두고 교육부(유치원 관할)와 보건복지부(어린이집 관할)가 갈등을 빚어왔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어린이집을 직접 방문해 “국공립 어린이집 비중을 40%로 끌어올리겠다”는 데 거듭 방점을 찍자 두 부처가 조율안을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어린이집은 뚜렷한 기준 없이 후순위로 밀려 있어 언제든 갈등이 재연될 수 있는 어정쩡한 봉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1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교육부와 복지부가 협의해 학교시설 활용원칙에 합의했다”며 “앞으로 추가 협의 과정에서는 두 부처뿐만 아니라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 아이를 둔 엄마ㆍ아빠, 지역 주민들의 의견까지도 수렴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두 부처 간 합의된 ‘학교 내 교실 활용 원칙’의 골자는 교실을 학교 교육 등 학교 본연의 기능을 위해 우선 활용하되 그단 논란이 돼 온 국공립 어린이집 등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시한 점이다. 국ㆍ공립 어린이집과 돌봄시설 설치는 지역별 수요를 조사한 뒤 각 부처 간 협의를 통해 실행하고, 3월까지 시설관리나 안전사고 책임, 물리적 공간 배치 등을 규정한 가이드라인도 마련하기로 했다.
특히 교육부는 모호했던 ‘활용 가능한 교실’(빈 교실)의 개념과 기준을 관계부처, 교육청 등과 협의해 마련하기로 했다. 명확한 기준을 통해 각 주체가 활용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개념부터 엇갈려 혼선이 크다는 지적을 반영했다. 실제 복지부는 본관 교실뿐만 아니라 학교와 연결된 복합시설ㆍ부수 건물 등에 위치한 공간을 빈 교실로 보는 반면, 교육부는 엄밀하게 학교 본관에 위치한 교실 가운데 ‘월 1회 또는 연간 9회 미만으로 사용하는 곳’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선 이번 합의를 두고 “너무 어정쩡한 결정”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빈 교실 내 어린이집 설치를 허용하면서도 어린이집보다는 유치원이 먼저라고 우선순위를 정하면서 찬ㆍ반 양측의 불만이 동시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설치를 원하는 학부모들 입장에서는 지역 내 어린이집 수요가 있더라도 또다시 교육부와 복지부, 교육청 간 합의가 필요해 논의 과정에서 평행선을 달릴 것이란 우려가 크다. 서울 강남구의 한 어린이집 원장은 “대체로 국ㆍ공립 중에서도 유치원보다 어린이집 종일반이 운영 기간이 길어 맞벌이 부모 사이에선 어린이집 확충을 원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며 “빈 교실이 생기더라도 결국은 어린이집이 가장 후순위기 때문에 큰 폭으로 늘어나긴 힘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반면 학교 현장에선 학교 개방에 따른 안전 사고 가능성, 초등학생의 학습권 침해 등을 문제 삼으며 어린이집 설치 허용 자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송재혁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은 “어린이집 증설을 통해 보육시스템을 안정화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지만 학교를 희생양 삼아서는 안 된다”며 “빈 교실은 되레 학급 당 학생 수를 축소해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활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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