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사람과 교제하여 아는 이가 많음을 뜻하는 관용표현으로 ‘발이 넓다’가 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반갑게 인사하는 걸 보면 그가 발이 넓긴 넓은 모양이다”와 같이 쓴다. 이와 반대되는 표현으로는 ‘발이 좁다’가 있는데 “만나는 사람만 만나다 보니 발이 좁아졌다”와 같이 쓴다. 인간관계를 넓히려면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사람을 만나야 하니, ‘발이 넓다’는 이런 점에 착안하여 만들어진 표현이다.
간혹 ‘발이 넓다’와 같은 표현으로 ‘얼굴이 넓다’나 ‘안면이 넓다’를 쓰기도 하지만, 내 언어 감각으론 “당신이 얼굴이 넓고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대표를 맡는 게 좋겠어”와 같은 표현은 어색하다. 그러나 ‘안면이 있다’나 ‘얼굴을 익히다’란 표현이 자연스럽다면, 아는 사람이 많음을 ‘안면이 넓다’나 ‘얼굴이 넓다’로 표현하는 걸 이상하다고 할 수는 없다. ‘얼굴이 넓다’가 과거에 비해 잘 쓰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지적할 수 있겠지만. 하여튼 분명한 건 한국인들은 ‘교제의 범위’를 말할 때 ‘얼굴’보다는 ‘발’을 먼저 연상한다는 사실이다.
기원상 ‘아는 사람이 많음’을 뜻하는 ‘얼굴이 넓다’는 일본어 관용표현 ‘顔が広い’를 번역한 표현인 듯하다. 일본인들은 ‘교제의 범위’를 말할 때 우리와 달리 ‘발’이 아닌 ‘얼굴’을 떠올리는 것이다. 이처럼 관습적인 연상은 언어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의 사고방식이 비슷하다 보니 언어를 가로질러 유사한 관용표현이 만들어질 수도 있고, 언어 간 상호작용으로 여러 언어권에서 유사한 관용표현이 쓰일 수도 있다. 한국어에서 ‘얼굴이 넓다’와 ‘발이 넓다’가 더불어 쓰인 때가 있었듯이, 일본어에서도 ‘顔が広い’와 ‘足が広い’가 더불어 쓰일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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