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지 무관한 일반고 배정 비율
20%→ 최대 40% 확대방안 검토
강남학교 진학시키려는 학부모
초등ㆍ중학생 때 일찌감치 전입
단계별로 진행되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자율형사립고(자사고)ㆍ외국어고(외고) 폐지 정책이 몰고 올 부작용으로 지목되는 건 ‘강남 8학군(강남ㆍ서초구)’의 재부상이다. 가까스로 전국 각지의 자사고ㆍ외고에 일부 분산시켜 놓았던 인재들이 다시 8학군 일반고로 쏠리게 될 거라는 우려다. 최근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정책에도 불구하고 강남 집값이 고공행진을 하는 데는 8학군의 인기가 더 높아진 것이 큰 원인 중 하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교육당국 역시 강남 8학군 쏠림 현상에 대한 우려가 없지는 않다. 그 대안으로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이 학군 조정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8학군 학교에 다른 지역 학생들이 더 많이 갈 수 있도록 배정 체계를 조정하면 부작용을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현재 서울시교육청은 고교선택제(선지원 후추첨) 체계 내에서 학생들을 1단계 단일학군(서울 전역) 20%, 2단계 일반학군(인근 학교) 40%, 3단계 통합학군(인근 학교 및 인접 학군) 40% 비율로 배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1단계 배정 비율을 20%에서 30~40%까지 늘리는 방식으로 강남 학군 문턱을 낮춰 굳이 강남으로 이사하지 않더라도 학생들이 이 지역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조 교육감의 구상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을 제대로 모르는 탁상공론에 가깝다는 회의감이 현장에선 팽배하다. 31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2017학년도 일반고 배정 당시 자신이 속한 학군 외 다른 학군을 선택한 학생은 11개 학군 내 총 3,954명으로, 전체 학생(5만7,129명)의 6.9% 수준에 불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의 배정 기준으로도 마음만 먹으면 강남 등으로 진입을 할 기회가 열려 있음에도, 그 기회를 활용하려는 학생들은 별로 많지 않은 것이다.
이는 강남 학교 진학을 염두에 둔 학부모들은 대체로 고교 진학 전 8학군으로 이사를 마치기 때문으로 보인다. 통계청의 ‘서울시내 각 구의 연령별 이동자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강남ㆍ서초구의 순이동(전입-전출) 인구는 만 7~12세(초등생 연령)에서 1,321명에 달했고 만 13~15세(중등생 연령)에선 78명으로 줄다가 만 16~18세(고교생 연령)에는 전입자보다 전출자가 많아지며 마이너스(793명)로 돌아섰다. 대체로 초등학생 때, 늦어도 중학생 때 8학군에 진입하는 것으로, 이런 추세는 수년간 지속되고 있다.
상위권 쏠려 지역간 학력차 심화
고교 서열화 해소 정책과도 모순
강남 인근지역만 혜택 지적도
이를 감안하면 서울 전역 배정 비율을 지금보다 두 배가량 늘리더라도 비(非)강남 학군에 머물면서 8학군으로의 진학을 택하는 학생들이 크게 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서울 관악구의 중2 학부모 정모(46)씨는 “강남 외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붙지 않으려고 고교 진학 전에 일찌감치 이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정 비율 조정이 효과를 내더라도 강남과 비강남 학교 간 격차 확대를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남 학교에서 내신 등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성적 경쟁력이 있는 상위권 학생들만 8학군으로 쏠리면서 지역 간 학력 차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강동구의 중학교 교사 김모(55)씨는 “학교에서 내신 성적이 최소 반에서 5등 안에 드는 학생들이 특목고나 강남 전학을 고려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학교 선택에서 ‘통학거리’를 빼놓을 수 없다는 점에서 8학군 인근 지역 학생들에게만 유리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새 학기 아들을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는 은평구의 김모(40)씨는 “경제적 여건이 안 된다고 은평구에 살면서 아이를 1시간이 넘는 통학거리의 강남 학교에 가라고 하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특권화된 강남 학군 혜택을 더 많은 타지역 학생들에게 누리도록 하겠다는 배정 비율 조정책은 강남 8학군을 해체하고 고교 서열화를 해소하겠다는 당국의 기본 취지와도 모순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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