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 한파가 매서웠다. 오죽하면 ‘서베리아(서울+시베리아)’ ‘냉동고 한파’ 같은 신조어까지 등장했을까. 동장군의 ‘역대급’ 기세 앞에서 세상 만물은 꽁꽁 얼어붙기 바빴다. 마치 추억의 ‘얼음 땡’ 놀이에 빠지기라도 한 듯 흐르는 강물도 파도 치는 바다도 ‘얼음!’을 선언하며 그대로 멈춰 섰다.
북극발 한파는 일상 생활에도 적지 않은 민폐를 끼쳤다. 곳곳에서 수도관 동파 사고가 잇따랐고 겹겹이 껴입고 나선 시민들은 뒤뚱뒤뚱 우스꽝스러운 펭귄걸음을 감수해야 했다. 숨을 쉴 때마다 콧물이 얼어붙을 지경이라 너도나도 찡긋찡긋 훌쩍훌쩍, 민망함까지 동반한 추위가 이젠 지겹다.
그나마 다행인 건 며칠 혹한을 겪고 나니 웬만한 추위도 견딜 만하다는 사실. 강추위가 만들어 낸 겨울 풍경도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영화 ‘겨울 왕국’의 얼음 궁전만큼 웅장하진 않지만 일상 곳곳에 깨알같이 자리 잡은 얼음 조각들은 하나같이 아기자기하고 신비롭다.
한파가 동반한 순간 냉동의 미학 덕분에 이른 아침이면 보석 같은 서리꽃이 차창을 뒤덮고 그 너머로 보이는 세상엔 때아닌 꽃눈이 내렸다. 작은 서리꽃송이는 공기 중의 수증기가 유리에 얼어붙어 탄생한 ‘자연산’ 디자인 작품이다. 땅 밑을 흐르는 하수의 따뜻한 수증기 역시 지상의 찬 공기를 만나는 순간 승화하며 얼음이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미세한 얼음 결정은 하수구 표면에 차곡차곡 쌓이며 강추위에 놀란 개구리의 눈을 완성했다. 흐르는 청계천에서 튀어 오른 작은 물방울 역시 ‘냉동고 한파’ 속에 속수무책으로 얼어붙었다. 개천 옆 축대와 조명시설, 나뭇가지마다 다양한 모양의 얼음 살이 덧붙여지고 동글동글한 호수 위 빙판은 날이 갈수록 동화 속 세상으로 변해 갔다.
30일 서울 낮 기온이 영상을 회복했지만 ‘얼음 땡’ 놀이는 오히려 흥미를 더해 간다. 여기저기서 ‘땡! 땡!’ 하며 얼음을 깨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시간마저 얼려 버릴 듯한 강추위와 야속한 칼바람이 만든 얼음 세상이 차츰 흐릿하게 녹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잠시 주춤했던 추위가 이번 주말 다시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인다. 입춘인 4일 서울 최저기온이 영하 15도 내외로 떨어지는 등 한파는 다음주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예보다. 유난히 추운 이 겨울 ‘얼음 땡’ 놀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주성기자 poem@hankookilbo.com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박미소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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