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친구들은 저보고 개천에서 용 났다네요.”
지난 30일 경북 의성군 컬링훈련원에서 만난 여자 컬링대표팀 김영미(27)가 깔깔 웃었다.
스킵(주장) 김은정(28), 리드 김영미, 세컨드 김선영(25), 서드 김경애(24), 후보 김초희(22) 등 5명으로 구성된 한국 대표팀은 열흘 전 캐나다에서 벌어진 그랜드슬램 국제 대회 8강에서 캐나다 호먼 팀을 7-4로 꺾었다. 호먼 팀은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 13전 전승으로 우승한 세계랭킹 1위(한국은 8위)다. 챔피언을 보기 좋게 누른 선수들이 자신감에 차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들의 표정은 들떠있지 않았다. 평소처럼 스톤을 던지고 브러시로 빙판을 닦으며 훈련에 열중할 따름이다.
캐나다전에서 큰 화제를 모은 6엔드 이야기에 잠깐 미소가 피었다. 김은정은 상대 빽빽한 3개의 가드(방어막) 사이로 스톤을 밀어 넣은 뒤 하우스 중앙에 있던 호먼 팀 스톤까지 쳐내 대량득점(3점)에 성공해 역전했다. 중계진은 “판타스틱”을 연발했고 캐나다 언론은 “손톱 하나 차이를 통과했다”고 극찬했다. 김영미는 “소름 돋았다. 난 안전하게 가자고 했는데 주장과 서드가 승부수를 던지자고 하더라”고 밝혔다. 정작 김은정은 “가장 자신 있는 샷을 했을 뿐”이라며 아무렇지 않은 듯 답했다. 한국은 4강에서 캐나다의 첼시 케리 팀에 4-6으로 졌지만 메이저 대회 3위에 오르며 올림픽 전망을 밝게 했다.
한국은 캐나다(호먼 팀)와 오는 15일 올림픽 예선 1차전에서 다시 격돌한다. 한국의 메달 획득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경기다.
캐나다는 컬링 등록 인구만 150만 명이 넘는다. 여자대표팀 선수들의 고향인 경북 의성군 전체 인구(약 5만 명)보다도 서른 배 많다. 한국의 컬링 등록 선수는 700~800명이다. 저변은 비교가 안 되지만 한국은 10년 이상 손발을 맞춰온 끈끈한 호흡과 영리한 플레이로 ‘평창의 반란’을 꿈꾼다.
컬링은 단체 종목 중에서도 특히 팀워크가 중요해 선발전 성적이 가장 좋은 팀이 국가대표가 된다. 해외에서도 부녀, 부부, 남매 등이 팀을 이루는 경우가 많은 대표적인 ‘패밀리 스포츠다. 한국 여자선수들은 “팀워크를 다지는 노력을 따로 하는 게 어색하다”고 말할 정도로 이심전심이다.
2006년 의성여고에 다니던 김영미가 친구 김은정과 함께 방과 후 활동으로 컬링을 시작했고 김영미 동생 김경애가 언니 물건을 건네주러 왔다가 얼결에 합류했다. 김경애 친구 김선영이 들어오고 2015년에는 경기도의 고교 유망주 김초희가 가세해 지금의 ‘팀 킴(Team Kim)’이 됐다. 컬링은 스킵의 성을 따서 팀 이름을 붙이는데 한국은 스킵 외 선수 전원에다 심지어 감독(김민정)까지 김 씨라 “모두 한 가족이냐”는 오해도 받는다. 실은 김영미, 김경애만 친자매다.
유일하게 의성 출신이 아닌 김초희는 “언니들이랑 다니면 의성 어디를 가도 다 아는 사람이라 인사하기 바쁘다. 택시를 탔는데 목적지도 말하기 전에 기사님이 알아서 데려다 주시더라”고 혀를 내둘렀다.
캐나다 팀 등은 180cm가 넘는 선수가 즐비해 남자 선수 못지않은 파워 플레이를 구사한다. 반면 한국 선수 신장은 158~160cm다. 그러나 김선영은 “몸싸움도 없는데 위축되지 않는다. 우리에겐 아기자기한 플레이가 있다”고 당당히 외쳤다. 김민정 감독은 “톱10 실력은 종이 한 장 차이라 올림픽에서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여자대표팀은 의성에서 이미 유명 인사다. ‘의성’하면 그래도 ‘마늘’ 아니냐는 농담에 김은정이 “우리 이제 마늘을 이겨야 하는 거야?”라고 혀를 쏙 내밀었다. 그러자 ‘팀 킴’이 한 목소리로 외쳤다.
“메달 따면 우리가 마늘보다 유명해지지 않을까?”
의성=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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