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증권가도 예상 못한 50대 1 액면분할
지난해 지주사 전환 중단에 이은 두 번째 ‘폭탄 선언’
경영권 연연 않겠다는 ‘JY 스타일’인가
삼성전자 이사회가 31일 주당 50대 1의 비율로 액면분할을 결의하자 재계와 증권가가 들썩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황제주’ 삼성전자 주식의 사상 첫 액면분할이기 때문이다.
액면분할은 250만원에 이르는 삼성전자 주가가 5만원으로 낮아지고 보통주 총수가 기존 1억2,838만6,494주에서 64억1,932만4,700주로 50배나 불어나는 엄청난 변화다. 주식시장은 물론 사회 전체에 파장을 미칠 이 같은 결정을 사장급 전문경영인들의 작품으로 보는 이는 없다. 재계에서는 구속 재판 중인 이재용 부회장이 또 한 번 ‘옥중 결단’을 내린 것으로 판단한다. 삼성 관계자도 “긴밀히 추진됐고 사전에 면회를 통해 이 부회장 보고와 승인을 거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예상을 뛰어넘은 두 번의 옥중 결단
이날 삼성전자의 액면분할 결정은 지난해 4월 27일의 지주회사 포기 선언과 오버랩 된다. 삼성전자 이사회는 당시만 해도 이 부회장의 가장 유력한 경영권 승계 방안으로 꼽힌 지주회사 전환을 백지화하기로 결의했다.
삼성전자는 공식적으로 “지주회사 전환이 사업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고 전환 과정에서 수반되는 여러 문제점을 감안했다”고 전환 중단 이유를 밝혔다. 아울러 약 50조원에 이르는 자사주를 모두 소각하기로 했다. 수감 중이던 이 부회장의 동의 하에 내려진 결정으로 알려졌다.
현 상법상 인적분할 시 사업회사를 지배하기 위한 핵심이 자사주다. 인적분할은 기존 주주들이 지주회사와 사업회사(자회사) 양쪽에 똑같은 지분을 소유하는 분할 방식이다. 이때 기존 회사에서는 의결권이 없었던 자사주가 사업회사에서는 의결권을 가져 총수의 지배력을 높여준다. 삼성전자의 엄청난 주가를 고려하면 이런 자사주를 활용하지 못할 경우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 소유 기준(20% 이상) 충족이 어렵다. 재계는 삼성전자의 막대한 자사주 소각을 경영권 승계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시그널로 해석했다.
향후 주가 추이를 지켜봐야겠지만 이번 주식 액면분할도 지배구조 강화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앞선다. 반도체가 이끄는 삼성전자의 엄청난 경영실적, 50배나 많아진 주식과 급속히 불어날 소액 투자자들을 감안하면 액면분할 뒤 5만원대에서 출발한 주가의 상승이 확실시된다. 주주가 크게 늘어나 경영 참여 요구나 간섭도 급증할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 주식의 액면분할은 비트코인 열풍을 잠재울 수 있을 만큼 위력적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 부회장 입장에서는 추가 지분을 확보하려면 액면분할 전보다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해지는 셈이다. 현재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지분이 0.65%에 불과하고 이건희 회장 등 총수 일가와 계열사 우호지분을 모두 합쳐도 20%가 안 된다.
‘JY 스타일’ 경영 의지 표현인가
자사주 소각에 이은 액면분할 결정은 결과적으로 “경영권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이 부회장의 그간 발언이 다시 한번 주목받게 됐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재판 과정에서 “삼성전자처럼 큰 회사에서 지분 몇 퍼센트는 의미가 없고, 리더가 되려면 사업을 이해하고 직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하며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경영철학을 밝혔다. 미국 하버드대 유학 시절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는 “직접 경영하는 것보다 전문경영인을 위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액면분할을 오는 3월 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할 계획이다. 액면 분할을 위해서는 정관 변경이 필요하다. 액면분할된 주식과 거래 중인 주식을 교환하는 절차도 거쳐야 해 분할된 주식 거래는 5월 중순쯤 시작될 것으로 예상한다.
한편에서는 메가톤급 발표가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이 부회장 항소심 선고 5일 전이라 시점이 미묘하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간 시장에서는 삼성전자 주식 액면분할 요구가 끊이지 않았지만 삼성전자는 “계획이 없다”는 반응을 보여왔다.
삼성 관계자는 “지난해 실적이 크게 상승해 액면분할 여력이 생겼고 올해 안에 소액 주주들도 주식을 살 수 있도록 이날 이사회를 개최한 것”이라며 “주주 가치를 높이기 위한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배당 확대의 연장선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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