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채용비리ㆍ방만경영 등으로 잇단 지적을 받아온 금융감독원을 일단은 공공기관으로 지정하지 않기로 했다. 정부가 직접 통제해야 할 필요성은 있지만, 금융감독기구의 독립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반대 의견을 받아들인 결과다.
정부는 31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를 열어 ‘2018년 공공기관 지정안’을 논의ㆍ의결했다. 이날 공운위는 수서고속철도(SR), 공영홈쇼핑, 서민금융진흥원 등 9개 기관을 기타공공기관으로 신규 지정했고,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을 공공기관 지정에서 해제했다. 또한 기타공공기관이었던 강원랜드를 공기업으로, 공기업인 한국관광공사를 준정부기관으로 전환하는 등 6개 기관의 공공기관 유형을 변경 지정했다.
관심의 초점이었던 금감원은 이번 공공기관 지정에서 제외됐다. 기재부는 “채용비리와 방만경영 등으로 공공기관 지정 여론이 있었지만,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가 금년에 본격 진행되는 점을 감안해 지정 유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만 금감원은 채용비리 근절대책을 마련하는 등 조직 혁신을 위한 대안을 마련하고 그 추진실적을 공운위에 보고하기로 했다. 공운위는 만약 이 추진 결과가 미흡하면 내년 지정 때 금감원을 공공기관에 지정키로 했다.
그 동안 기재부는 채용이나 직원 관리 등에서 허점을 노출한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을 추진해 왔고, 금융위원회와 국회 정무위원회는 “그렇게 되면 금감원이 공공기관 정책을 총괄하는 기재부의 통제 하에 들어갈 수 있다”며 지정을 반대해 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채용비리 때문에 정부의 공적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공공기관에서도 채용비리가 끊이지 않을 것을 보면 채용 문제 때문에 감독업무를 하는 특수기관인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한다는 논리는 맞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현재 기타공공기관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공기업으로 전환하지 않고 그 지위를 지금처럼 유지하기로 했다. 두 은행 역시 공기업 지정을 피하는 대신 방만경영과 채용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조치를 수립하기로 했다.
역시 채용비리로 홍역을 치른 강원랜드는 기타공공기관에서 공기업으로 성격이 전환된다. 기타공공기관은 경영공시 의무만 가지는 등 상대적으로 느슨한 통제를 받지만, 준정부기관이나 공기업이 되면 매년 정부로부터 경영평가를 받게 되는 등 인사ㆍ조직ㆍ재무 등에서 기재부의 강력한 통제를 받아야 한다. 특히 공기업의 비상임이사의 경우 기재부 장관이 임명권을 행사한다.
세종=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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