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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훈의 자동차 현대사] 모닝의 조상 ‘비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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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훈의 자동차 현대사] 모닝의 조상 ‘비스토’

입력
2018.01.31 01:05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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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4월 1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하얏트호텔에는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구 회장을 비롯, 산업자원부 장관, 이정무 건설교통부 장관 등이 참석해 기아자동차 제2의 창업을 선언하는 ‘기아 새 출발 2000’행사가 개최됐다. 이날 비스토와 카스타 발표회도 함께 열렸다.

비스토는 기아차의 경차로 출시됐지만 탄생 배경은 조금 복잡하다. 요약하자면 97년 9월 출시한 현대차의 아토스가 인도로 건너가 상트로가 됐다. 상트로를 다시 한국형으로 변경을 한 뒤 비스토란 이름으로 기아 로고를 달고 국내 판매에 나서게 된다.

비스토는 800㏄ 4기통 MPI엔진을 장착한 경차로, 견고한 이미지와 안전도를 강조했다. 고급형 ‘Q’와 그 아랫급 ‘S’ 등 두 종류를 550만원, 520만원으로 각각 판매했다. 2000년 12월에는 터보 인터쿨러 엔진을 장착한 비스토 터보가 출시된다. 70마력 4단 자동변속기를 적용 최고 시속 149㎞까지 속도를 높인 모델. 가격은 630만~648만원으로 구성했다.

비스토는 자동차성능시험연구소가 2002년 실시한 충돌 테스트에서 경차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시속 56㎞로 콘크리트 벽에 정면충돌시키는 시험에서 비스토가 아토스와 마티즈Ⅱ보다 높은 점수를 얻었다.

비스토는 마티즈보다 높고, 아토스보다는 낮아 시트 위치가 좋았다. 경차로서 좁은 공간을 차 높이로 해결하면서도 너무 높지 않아 디자인적으로도 좋은 비례를 확보했다.

비스토의 등장 이후 업계에서는 경차 기준 논란이 벌어졌다. 수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경차의 크기와 배기량을 늘려야 한다는 현대ㆍ기아차와 800㏄로도 해외에서 이미 큰 인기를 끌고 있다며 확대할 필요 없다는 대우차가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당시 자동차 관리법은 배기량 800㏄ 이하, 길이 3.5m 이하, 높이 2.0m 이하, 폭 1.5m 이하로 경차 기준을 규정하고 있었다.

경차 기준이 변경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03년 12월 비스토는 단종됐고 2004년 그 후속 차종으로 나온 모닝은 1ℓ 엔진을 적용해 경차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2008년 비로소 배기량 1ℓ, 차폭 1.6m미만으로 경차기준이 확대되면서 모닝이 경차로 인정받게 된다.

현대차그룹 차원에서 경차 시장은 계륵 같은 존재였다. 수익성이 낮지만 포기할 수도, 그렇다고 전력을 다해 매진할 수도 없는 시장이었다. 결국 경차는 기아차가 맡기로 하고 현대차는 경차 생산을 중단하는 결단을 내리게 된다. 현대차 아토스는 단종하고 기아차 비스토가 현대차그룹의 유일한 경차 지위를 맡게 된다.

수익성 문제는 결국 아웃소싱으로까지 번진다. 경차는 수익성이 떨어져 협력업체를 통해 생산하는 방안이 검토되다가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아웃소싱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비스토의 후속 모델인 모닝부터 동희오토가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기아차가 기아 모텍을 통해 스포츠카 엘란을 아웃소싱한 적은 있었지만 대량 생산 차종을 위탁 생산한 것은 모닝이 처음이었다.

오토다이어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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