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다음달 4일 금강산에서 열기로 합의한 남북 문화행사를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앞서 예술단 사전 점검단이 아무 설명 없이 일정을 중단했다가 재개한 행태의 되풀이다. 실무준비가 한창이던 행사를 불과 며칠 남기고 느닷없이 판을 뒤엎은 행태에 말문이 막힐 뿐이다. 이래서야 예정된 다른 남북 공동행사들도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세운 이유도 가당찮다. 북한은 통지문을 통해 “북한이 취하고 있는 진정 어린 조치들을 모독하는 여론을 계속 확산시키고 있고, 북한 내부의 경축행사까지 시비하는 만큼 합의된 행사를 취소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대북제재 결의 위반 논란 등 ‘평창 교류’에 비우호적인 여론이 형성된 것은 맞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 정부 책임일 수는 없다. 정부가 언론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북한도 잘 아는 사실이다. 내부 경축행사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건군절 열병식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나 국내외의 거센 비판 여론과 달리 정부 대응이 너무 안이하다는 비난 여론이 이는 상황이다. 이런데도 이를 우리 정부 책임으로 몰아붙여 행사를 취소한 데는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평화올림픽을 치르자고 하면서 올림픽 개막 바로 전날 대량살상무기를 앞세운 대규모 군사퍼레이드를 벌이겠다는 게 무슨 꿍꿍이인가.
북한의 이번 결정 배경은 짐작이 간다. 올림픽 참가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제재여론이 전혀 수그러들지 않는 데 대한 당혹감이나 불만의 표시일 수 있다. 향후 한미연합 군사훈련이나 남북 정치회담 등을 겨냥한 남측 길들이기 차원일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북한이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은 더 이상 위장평화 공세는 통하지 않으리란 점이다. 혹시라도 남북교류에 적극적인 문재인 정부를 이용해 제재를 피해볼 요량이라면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맞다. 북한이 ‘평창 이후’까지 보장받으려면 비핵화를 위한 진지한 대화에 나서는 길밖에 없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도 보다 현실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평화올림픽을 위해 저자세 논란을 무릅쓰면서까지 북한의 선의에 기댄 결과가 이럴진대, 정치ㆍ군사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뤄야 할 ‘평창 이후’의 대북 협상이라면 한결 엄밀할 자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북한의 트집잡기에 즉각적으로 유감을 표하면서도 더는 미련을 보이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다. 일단 북한과의 소통 채널을 확보한 만큼, 서둘 것 없이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자세로 대북 협상에 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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