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과 LG, SK 등 20개 대기업집단의 지주회사 등이 계열사에서 받는 ‘이름값’(상표권 사용료)이 연간 1조원에 육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같은 상표권 수익이 총수일가의 ‘쌈짓돈’을 채우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상표권 사용료의 상세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30일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 2016년 20개 대기업집단의 상표권 사용료(로열티) 수입은 9,314억원을 기록했다. 상표권 사용료는 대기업집단 내 대표회사(통상 지주회사)가 계열사에 상표권을 빌려주고 받는 대가다. 예를 들어 LG그룹 계열사들은 ‘LG’ 브랜드를 사용한 대가를 ㈜LG에 지급하고 있다. 상표권 사용료 규모는 2014년 8,655억, 2015년 9,226억원 등 매년 증가 추세다. 대기업의 상표권 수익 현황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업별로 보면 LG(2,458억원)와 SK(2,035억원)의 상표권 사용료 수입이 각각 2,000억원을 넘어 가장 많았다. CJ(828억원) 한화(807억원) GS(681억원) 한국타이어(479억원)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반면 재계 1위인 삼성은 89억원에 불과했다. 2016년 말부터 상표권 사용료를 거두기 시작한 현대차그룹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상표권 사용료를 지급하는 계열사 수는 SK가 58개로 가장 많았고, CJ(32개) GS(25개) LG(19개) 등의 순이었다. 사용료는 매출액(또는 매출에서 광고선전비를 제외한 금액)에 일정비율(사용료율)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산정됐다.
하지만 상표권 수익구조는 ‘불투명’ 그 자체였다. 상표권 사용료를 지급하는 전체 277개 계열사 중 구체적인 사용료 산정방식 등 세부 내역을 공시하고 있는 회사는 33개사(11.9%)에 불과했다. 총수일가가 지배하는 지주회사 등이 각 계열사에 상표권 사용료를 과도하게 부과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상표권 수익이 총수일가에 대한 부당지원의 ‘통로’로 악용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한 셈이다. 실제 상표권 사용료를 받는 20곳 중 13개 회사(65%)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총수일가 지분율 30% 이상)이었다.
이에 공정위는 상표권 사용료 수취내역을 매년 상세하게 공시하도록 하는 ‘대기업집단 소속회사의 중요사항 공시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행정 예고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대기업집단은 앞으로 계열사간 상표권 사용거래 현황을 매년 5월 31일 공시해야 한다.
신봉삼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상표권 보유회사의 사용료 수취는 그 자체로는 적법한 행위지만 수취 경위나 사용료 수준의 적정성을 두고 총수일가 사익편취에 악용될 우려도 있다”며 “이에 대한 공시가 강화되면 주주 등 이해관계자들이 상표권 사용료가 적정한지 여부 등을 판단하고 개선 압력을 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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