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음란사이트 부당 이득
시가 24억원 상당 몰수 명령
“재화ㆍ용역 구매 가능한 재산”
항소심 재판부, 1심 뒤집어
안모(33)씨는 2013년 12월부터 지난해 초까지 미국에 서버를 둔 불법 음란물 사이트인 ‘AVSNOOP.club’을 운영하면서 19억여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아동ㆍ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지난해 5월 구속 기소됐다. 회원만 122만명에 달하는 사이트였는데, 그는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추적이 어려운 전자문화상품권이나 비트코인 등으로 포인트를 결제하도록 했다.
검찰은 안씨를 기소하면서 그가 소유하고 있던 216 비트코인도 범죄수익으로 판단, 압류했다. 같은 해 9월 열린 1심에서는 몰수도 청구했다. 구속 시점인 지난해 4월 17일 216 비트코인 가치는 5억여원이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검찰의 몰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문제의 비트코인 가운데 범죄수익에 해당하는 부분만을 특정하기 어렵고, 물리적 실체 없이 전자화한 파일 형태인 비트코인을 몰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1심 판결에 불복한 검찰은 부장검사를 팀장으로 한 ‘비트코인 환수팀’을 별도로 꾸리고 항소심에 대비했다. 2014년 비트코인에 대한 몰수 판결을 선고한 미국 뉴욕주 지방법원의 판례 등 세계 각국의 실태도 파악했다. 검찰이 조사한 결과 호주와 프랑스, 독일, 불가리아 등에서도 비트코인을 범죄수익으로 몰수한 사례가 다수 있었다.
검찰의 이런 적극적인 대응에 2심 법원이 1심을 뒤집었다. 가상화폐를 경제적 가치가 있는 재산으로 보고 국내 처음으로 몰수 판결을 내렸다.
수원지법 형사항소8부(부장판사 하성원)는 30일 안모씨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징역 1년6월의 형량은 유지하되, 몰수 및 추징 부분에 대한 원심을 파기하고 191 비트코인 몰수와 6억9,580만원 추징을 명령했다. 서버에 이체 내역이 기록돼 있는 등 사이트 운영으로 얻은 수익임이 명백히 드러난 비트코인을 몰수하도록 한 것이다. 1 비트코인이 이날 1,250여만원 안팎에서 거래된 것을 감안하면, 그 가치는 23억8,700여만원으로 튄 상태다.
항소심 재판부가 1심과 다른 판결을 내린 이유는 “비트코인이 법정화폐로 환전이 가능하고, 가맹점 등을 통해 재화와 용역을 구매할 수 있어 재산에 해당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피고인 안씨가 회원들에게 포인트를 지급한 뒤 비트코인을 받아 일부를 현금으로 바꿔 상당한 수익을 챙긴 점 등을 그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은닉 재산을 물건에 한정하지 않고 현금, 예금, 주식, 그 밖에 재산적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재산으로 본다”며 “현실적으로 비트코인에 일정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다양한 경제활동이 이뤄지고 있다”고 판시했다. ‘사회통념상’ 경제적 가치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이상현 수원지법 공보판사는 “비트코인의 몰수 대상성을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라면서 “법정 화폐로서의 가능성은 이번 판결의 쟁점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수원지검은 항소심 판결 뒤 자료를 내 “가상화폐 형태의 범죄수익을 몰수하는 리딩케이스(Leading Case)를 이끌어 냈다”며 환영했다. 검찰 관계자는 “상고심에선 몰수되지 않은 나머지 25 비트코인에 대해서도 추징 보전을 청구할 예정”이라며 “압수한 비트코인의 공매ㆍ폐기 등 후속 조치는 아직 논의하지 않았다”고 했다.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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