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이 이제 딱 열흘 남았다. 2003년 첫 유치 도전부터 14년, 1998년 강원 남부 폐광지역번영협의회가 유치에 나서기로 공식 선언한 시점부터 따지면 무려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단 17일 간의 대회를 위해 어떤 이들은 청춘을 바쳤다. 김운용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 15년간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을 역임한 이수영 전 OCI 그룹 회장 등 한국 스포츠와 동계 스포츠에 터를 닦아 놓은 원로들은 끝내 안방 올림픽을 못 보고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평창은 ‘최순실 게이트’와 적자와의 전쟁 등 악전고투 끝에 여러 경로의 후원과 붐업, 북한의 참가로 성공 개최의 전기를 마련했고, 세계 각국이 최대 규모의 선수단 파견으로 화답하면서 기대감은 고조되고 있다. 경기장 사후 활용 방안 등 적자 올림픽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상존하지만 당장은 안정적인 대회 운영에 전력을 쏟아 부어야 할 때다. 금전적 손익 계산을 넘어 무형의 가치 창출이 곧 흑자 올림픽의 초석이기도 하다.
경기장 등 완벽을 자부하는 하드웨어는 든든히 믿고, 지금부턴 소프트웨어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얘기다. 30년 전 서울올림픽의 영광과 추억보다는 불과 4년 전 인천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의 부끄러운 과오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28년 만의 안방 아시안게임으로 관심을 모았지만 정작 대회 도중 성화가 꺼지고, 선수 도시락에선 식중독균이 발견됐으며 선수촌 승강기가 고장 나는 촌극이 잇따랐다. 배드민턴 경기장은 정전, 세팍타크로 경기장은 천장에서 물이 새 경기가 중단되는 등 국제적 망신의 연속이었다. 특히 대회의 얼굴인 자원봉사자들이 선수들에게 사인 요청을 하거나 처우에 불만을 품고 이탈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평창동계올림픽 역시 성공을 운운하기 앞서 기본은 손님을 맞는 태도다. 대회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자원봉사자들의 수는 2만1,313명(올림픽 1만4,523명ㆍ패럴림픽 6,790명)이다. 이중 선발한 인원은 2만840명(내국인 1만9,618명ㆍ64개국 외국인 1,222명)에 달한다. 국내외 동시 온라인 공개 모집을 한 결과 146개국 개인 9만1,656명이 지원했다. 경쟁률이 적어도 4대 1을 넘은 것이다. 자원봉사자들은 지난해 4월부터 8월까지 전국 권역별 기본교육을 2차례 받았다. 주로 대회ㆍ경기, 국제 서비스 매너, 장애인식, 양성평등, 안전관리 등에 관한 것이었다. 대회 조직위원회는 기초부터 철저하게 대면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조직위원회는 "기본 교육부터 얼굴을 마주보면서 진행해 책임감과 대회에 대한 인식을 확실하게 심어주려고 한다"면서 “인천 아시안게임을 교훈 삼고 있다. 그래서 모집 인원부터 고민이 많았다. 봉사자들에게 적정한 업무량을 부여하고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인원을 뽑으려고 했다“고 밝혔다.
비단 자원봉사자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50여 년 전 일본은 도쿄올림픽(1964년)을 앞두고 ‘오아시스 운동’(오하요 고자이마스, 아리가토 고자이마스, 시츠레이 시마스, 스미마셍의 첫 글자를 딴 친절 시민 운동)을 벌였다. 원정 아닌 안방 올림픽의 성공 잣대는 금메달 몇 개에 종합 몇 위가 전부는 아니다. 모두가 주인이라는 생각으로 손님 맞이 의식 개혁에 앞장서야 한다.
올림픽은 스포츠뿐만 아니라 정치, 외교, 문화, 경제를 아우르고 성별, 국가, 종교, 인종을 초월하는 인류 최대의 제전이다.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전 IOC 위원장은 김운용 전 부위원장이 발간한 책 ‘위대한 올림픽’ 서문에서 “국제정세의 묘한 기류에 휩쓸려 많은 공포와 위협에 직면했던 제24회 서울올림픽은 올림픽 사상 가장 기억에 남는 위대한 대회로 기록되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서울올림픽은 12년 만에 동서 국가들이 모인 진정한 평화의 제전이었고, 우리는 민주화 선진국 진입의 동력을 얻었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30년 전 한강의 기적을 보여준 한국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은 또 한번 바뀔 것이다. 평창을 향해 묵묵히 걸어 온 20년 내공과 한민족의 저력을 믿어 본다.
성환희 스포츠부 기자 hhsu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