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지지역 31개 시ㆍ군 중 19곳
퇴직 공무원 출신 낙하산 차지
민간 주도 운영 원칙도 말뿐
정치 중립성 확보 지침 어긋나
“수천, 수만 유권자의 개인정보를 관리하는 자원봉사센터는 지방자치단체장에게는 중요한 먹잇감입니다.” 등록한 시민의 이름과 주민번호 등을 도용, 11만건이 넘는 실적을 부풀린 경기 성남자원봉사센터의 부조리(본보 18일자 15면 보도)가 드러난 직후 또 다른 자원봉사센터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털어놓은 하소연이다.
익명을 요구한 그는 “자원봉사센터들의 실적 부풀리기는 비단 성남시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라며 “(이런 행태는) 자신을 임명해 준 단체장에게 잘 보이려는 퇴직공무원들의 보은 성격이 강하다”고 토로했다. 지난 2014년 6월 지방선거 때는 자원봉사자 정보를 현직 단체장 선거캠프에 건네라는 지시를 거부했다가 한직으로 쫓겨난 직원도 있었다고 한다. ‘관피아(관료+마피아)’의 관행과 부작용이 민간 주도 운영을 원칙으로 하는 자원봉사센터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이다.
29일 한국일보가 경기지역 31개 시ㆍ군 자원봉사센터의 운영실태를 파악한 결과에서도 무려 60%가 넘는 19개 시ㆍ군에서 퇴직 공무원이 센터장으로 앉아 있었다.
실적 뻥튀기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성남자원봉사센터는 지난 지방선거를 9개월여 앞둔 2014년 9월 센터장이 시청 고위 공직자 출신 A씨로 바뀌었는데, 지난해 8월에는 비서실장과 구청장을 지낸 B씨가 다시 임용됐다.
고양시와 평택시, 파주시, 남양주시, 의정부시, 광주시, 여주시, 연천ㆍ가평ㆍ양평군 등에서도 센터장 자리를 퇴직 공무원들이 꿰차고 있었다.
하남시는 자원봉사센터장을 직영으로 운영, 지난해까지 현직 공무원을 센터장으로 파견해 관리해 왔다. 화성시자원봉사센터는 이사장 직을 현 시장 인수위원회에서 일했던 정당인 출신에 맡기고 있다.
이런 관행은 ‘센터 운영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 하도록 한 행정안전부의 자원봉사센터 운영지침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많다. 고위 공직자가 공직윤리위원회 심의 없이 ‘낙하산’식으로 임용되는 데 대해선 ‘공직자윤리법’ 위반이라는 시각도 있다. 공직자윤리법(18조2)은 모든 공직자는 재직 중 직접 처리한 업무를 퇴직 후에 취급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센터장으로 임용된 퇴직 공무원이 현직일 때 자원봉사센터 보조금 지급 업무에 관여했다면, 재취업 자체가 금지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인사혁신처도 비슷한 내용의 유권해석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자체는 자원봉사활동기본법 시행령(14조) 센터장 자격요건 중 하나인 ‘5급 이상 퇴직 공무원으로 자원봉사 또는 사회복지업무에 3년 이상 종사한 자’를 핑계로 센터장을 관피아로 앉히고 있다. 자원봉사센터 운영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조항이 되레 관피아를 꽂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셈이다.
일부 자원봉사센터 활동가들은 이 조항이 공직자윤리법과 상충된다며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경기지역 한 자원봉사센터 활동가는 “관피아 출신들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서둘러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유명식 기자 gij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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