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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리원선 북한 감독, 작년 강릉대회가 마지막 만남 될 줄이야…

입력
2018.01.30 04:4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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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 지난 28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 빙상장에서 합동훈련 중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한체육회 제공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 지난 28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 빙상장에서 합동훈련 중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한체육회 제공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 꾸려진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가슴이 설렜다. 북한 선수단을 이끌고 내려올 ‘반가운 형님’을 다시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한껏 들떴다.

북한의 사령탑으로 리원선 감독이 내려올 줄 알았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선수 시절 친분을 쌓았던, 내겐 절친한 형이다. 지난해 강릉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했을 때도 리 감독이 팀을 지휘했다. 그런데 25일 공개한 명단의 감독 자리엔 박철호란 이름이 적혀있었다. 이유를 알고 보니 리원선 감독은 작년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어쩐지 작년에 강릉에서 만났을 때 얼굴이 많이 야위었더니. 가슴이 먹먹했다.

고인이 된 리 감독과는 추억이 많다. 1986년 아시안게임에서 처음 만난 이후 1~2년마다 국제 대회에서 자주 봤고, 친분을 쌓여갔다. 가장 많은 추억을 남긴 대회는 1992년 영국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였다. 당시 남북한은 같은 숙소를 썼다. 북한이 2위를 했고, 우리는 꼴찌였다. 시상식을 마친 뒤 숙소에서 리 감독에게 ‘맥주 한 잔 해요’라고 하니, ‘지도관 한테 얘기할 테니 살짝 왔다 가라’고 오케이 사인을 냈다. 북한 지도관도 우리 감독이랑 술 한잔 하면서 친분을 쌓은 상태였다.

서울서 가져온 맥주와 소주를 챙겨 리 감독의 방으로 갔다. 함께 얘기를 나누다가 우연히 빨간색의 북한 여권을 봤다. 안을 들여다 보니까 우리 여권처럼 글씨가 프린트 돼 있는 것이 아니고 연필로 쓰여 있었다. 분명 리 감독이 연장자인줄 알고 1969년생인 내가 형이라 불렀는데, 여권엔 1971년으로 표기됐다. 여권을 본 뒤 ‘내가 형이네’라고 말하자 리 감독은 ‘동생, 반말하지 말라’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재차 ‘사기야, 사기’라고 몰아붙이니 ‘야, 이거 어쩔 수 없어’라며 서둘러 나이 논란을 덮으려고 했다. 운동했던 사람들이라 참 순수했다.

헤어질 때 주머니에 있던 50달러를 슬며시 쥐어줬다. 돈을 받은 리 감독은 갑자기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더니 ‘이 돈이면 우리 가족 몇 달은 먹고 살 수 있다’고 고마워했다. 답례로 북한에서 직접 가져온 뱀술을 가슴에 안겨 줬다.

운동을 할 때는 이념이 없다. 평창올림픽에 나설 단일팀도 합동훈련에 들어간 만큼 이제 서먹서먹한 것은 금세 사라졌을 것이다. 올림픽까지 짧은 시간 완벽한 조직력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역사에 남을 팀이라는 자부심을 잊지 말고 하나된 모습으로 또 하나의 감동을 선사해주길 바란다.

국군체육부대 아이스하키팀 심의식 감독.
국군체육부대 아이스하키팀 심의식 감독.

심의식 국군체육부대 아이스하키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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