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평화를 찾길 바라.” 28일 미국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제60회 그래미어워즈. 미국 가수 케샤의 무대에 신디 로퍼를 비롯해 안드라 데이, 카밀라 카베요 등 동료 여성 음악인들이 흰색 옷을 맞춰 입고 함께 올라 케샤의 노래 ‘프레잉’을 합창했다. ‘프레잉’은 케샤의 시련이 담긴 발라드 곡이다. 케샤가 음악 프로듀서인 닥터 루크에게서 성폭행을 당했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진 뒤 상처를 딛고 일어서겠다는 내용을 녹여 지난해 8월 내놓은 노래다.
케샤는 노래를 마친 뒤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동료 여성 음악인들이 건넨 연대와 위로의 손길에 감정이 뜨겁게 달아오른 눈치였다. 로퍼 등 동료들이 울컥한 케샤를 꼭 껴안았다. 객석에서는 기립박수가 터졌다. 또 다른 미국 가수 핑크는 맨발로 무대에 올라 여성에 대한 폭력에 맞서는 강한 의지를 담은 ‘와일드 허츠 캔트 비 브로큰’을 호소하듯 불러 시청자를 뭉클하게 했다.
골든글로브에 이어…. 계속된 ‘#미투 캠페인’
이번 그래미어워즈의 화두는 ‘여성 인권’이었다. 지난 7일 열린 제75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이어 그래미어워즈에서도 성폭력으로 얼룩진 할리우드를 향한 저항의 목소리가 거셌다. 여배우들이 자신들이 당한 성폭력을 고발하기 위해 지난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시작한 ‘#미투(MeTooㆍ나도 당했다) 캠페인’은 그래미어워즈에서도 계속됐다.
골든글로브가 검은색 드레스로 뒤덮였다면, 그래미어워즈에는 백장미 물결이 일었다. 레이디 가가, 켈리 클락슨, 핑크 등 여성 음악인을 비롯해 시상식을 주최하는 레코딩 아카데미의 회장 닐 포트나우, 시상식 진행자인 제임스 코든, 가수 샘 스미스 등 남성들도 백장미를 옷에 달거나 들고 레드카펫을 밟았다. 영국 가수 엘튼 존은 히트곡 ‘타이니 댄서’를 부를 때 피아노 위에 흰 장미를 올려 놓고 무대를 꾸려 ‘반 성폭력’ 캠페인에 뜻을 함께 했다.
백장미는 성폭력 공동대응 단체 ‘타임스 업(Time’s Up)’ 운동에 대한 지지를 의미한다.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한 음악인들의 호소도 나왔다. 미국 가수 자넬 모네이는 “우린 한 가정의 딸이고 어머니이자 아내이며 이 사회에서 당당하게 일하는 여성”이라며 “우리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하지 못하게 하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환경에서 서로를 믿으며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유의 얼굴 금이 가”… 트럼프 정부 풍자 가득
이번 시상식은 정치, 사회적 메시지가 특히 두드러졌다. 축하 무대엔 풍자가 넘쳤다. 화살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로 향했다. 아일랜드 록 밴드 U2는 허드슨강에 마련된 무대에서 신곡 ‘겟 아웃 오브 유어 오운 웨이’를 불렀다. 횃불을 들고 있는 자유의 여신상이 여러 차례 카메라에 클로즈업 됐다. U2의 노래에는 “자유의 얼굴에 금이 가고 있다”며 무너진 미국의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풍자의 직격탄을 맞기도 했다. 존 레전드와 셰어, 스눕 독 등은 영상에서 미국 작가 마이클 울프의 저서 ‘파이어 앤드 퓨리’ 일부 내용을 소리 내어 읽었다. 책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에피소드를 가득 담아 화제가 됐다. 전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도 영상에 깜짝 등장해 책을 읽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트위터에 “그래미에서 가짜뉴스 책의 발췌본을 읽게 한 것은 대선에서 패배한 데 대한 위로상처럼 보인다”며 클린턴에게 반격을 가했다.
비 영어권, 흑인 음악에 인색 여전
그래미는 흑인 래퍼들의 힙합 음악에 여전히 인색했다. 제이 지와 켄드릭 라마는 새 앨범이 여러 평단의 극찬을 받았지만 ‘올해의 앨범’ 등 본상에서 모두 고배를 마셨다. 흑인보다 백인 심사위원이 많은 그래미의 보수성 탓이다. 영어권 밖 음악에 대한 냉대도 계속됐다. 지난해 전 세계를 강타한 라틴팝 ‘데스파시토’의 주인공 루이스 폰시는 무관에 그치며 외면 받았다.
상 몰아주기도 계속돼 시상식의 흥미는 반감됐다. 미국 가수 브루노 마스는 3대 본상인 ‘올해의 앨범’과 ’올해의 레코드’(앨범 ‘24K 매직’)를 비롯해 ‘올해의 노래’(‘댓츠 왓 아이 라이크’)를 휩쓸며 7관왕에 올랐다. 그래미는 지난해 영국 가수 아델에 3대 본상을 몰아줬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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