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박항서 “운으로 결승까진 갈 수 없어… 선수들의 실력”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박항서 “운으로 결승까진 갈 수 없어… 선수들의 실력”

입력
2018.01.29 18:44
0 0

‘U-23 준우승’ 기적 주인공, 박 감독 인터뷰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29일 하노이 VN익스프레스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 베트남 국기 금성홍기가 새겨진 선수단복 차림으로 인터뷰에 나선 박 감독은 소집기간은 물론 자신이 대표팀 감독으로 임용되던 당시의 소회 등 베트남 축구 전반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VN익스프레스 캡쳐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29일 하노이 VN익스프레스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 베트남 국기 금성홍기가 새겨진 선수단복 차림으로 인터뷰에 나선 박 감독은 소집기간은 물론 자신이 대표팀 감독으로 임용되던 당시의 소회 등 베트남 축구 전반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VN익스프레스 캡쳐

베트남의 축구역사를 새로 쓴 박항서 감독은 29일 한국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결코 ‘운’ 만으로는 성취할 수 없었던 성적”이라며 “이번 성과는 일시적 현상이 아닌 베트남 선수들의 본 실력”이라고 강조했다. 3년 전 U-20(20세 이하) 대회에서 좋은 경기를 보여준 선수들이 이번 U-23 대회에 주전으로 나선 걸 이유로 ‘운수 좋은 박 감독’이라는 일부 주장을 일축한 것이다. 박 감독은 결승전 당시 경기장 폭설과 관련 “그 정도 날씨면 연기하는 게 맞다”며 “연기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박 감동은 이날 온라인 매체 VN익스프레스가 축구팬으로부터 받은 질문으로 하노이에서 2시간 동안 인터뷰를 가진 데 이어 베트남축구협회 주최 기자회견, 국회 환영행사, 하노시 환영만찬 등으로 지난 10월 취임 이후 가장 분주한 날을 보냈다.

박 감독은 “젊고 유능한 한국의 다른 지도자를 놔두고 베트남축구협회(VFF)가 왜 자신을 선택했는지 이유를 아직도 모른다”면서 “베트남 국민은 물론, 한국 국민들의 응원과 격려 덕분에 높은 성과를 올렸다. 베트남 축구의 위상을 더 높이고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주요 일문일답.

_목표를 어디에 설정했나.

“솔직하게 이야기 해서 그렇게 높게 안 잡았다. 베트남축구협회(VFF)에서는 3점이라고 했다. 1승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첫 번째 경기에서 고향팀 한국을 만났다. 이기고 싶었지만 잘 안됐다. 그런데 그 다음 호주를 이기기 시작하면서 잘 풀렸다. AFC도 베트남이 예선전을 통과할 가능성을 매우 낮게 봤다. 우리는 우리 앞에 있는 각 경기에 집중했다.”

_‘베트남 선수들은 자신들이 한국과 일본과 같은 수준에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오해가 조금 있는 것 같다. 같은 수준에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베트남 선수들은 한국이나 일본 선수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기술, 속도, 체력 같은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이야기 했다. 일본 팀을 맡아본 적이 없어서 나는 그들을 잘 모른다.”

_어떻게 해서 베트남축구협회로부터 감독 자리를 제안을 받았나.

“창원에 있을 때 내 대변인이 VFF에서 나한테 관심 있어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프로 축구단을 이끌고 있던 때였고, 해외에서 뛰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이건 국가 대표팀이 아닌가. 강원FC에서 뛰고 있는 쑤언 쯔엉 선수를 아는 정도지 베트남 축구에 대해 많이 알지 못했다. 하지만 베트남 축구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이게 내 경력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도전했다. VFF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왜 나를 선택했는지 이번 기회에 VFF에게 묻고 싶다. 당시 한국에는 나보다 더 젊고 능력 있는 지도자들이 많았다.”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오른쪽 두번째)이 28일 오후 베트남 정부청사에서 응우옌 쑤언 푹 총리의 환영을 받으며 악수하고 있다. 박 감독은 이날 베트남 축구역사를 새로 쓴 공로로 훈장을 받았다. . VN익스프레스 캡쳐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오른쪽 두번째)이 28일 오후 베트남 정부청사에서 응우옌 쑤언 푹 총리의 환영을 받으며 악수하고 있다. 박 감독은 이날 베트남 축구역사를 새로 쓴 공로로 훈장을 받았다. . VN익스프레스 캡쳐

_어떤 기준으로 U-23팀을 꾸렸나.

“베트남 오기 전에 선수들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 나는 보통 선수들이 직접 경기 뛰는 것을 보면서 선택한다. 그렇지만 23세 이하 수백 명 선수를 모두 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기술 코치들의 도움을 받아서 선택했지만, 선수들의 경기력 외에도 각 선수의 인성, 생활 습관도 보려고 노력했다. 다른 선수들과 잘 지내는 선수를 선택했다.”

_어린 선수들에게 어떤 영감을 주는데 주력했나.

“살다 보면 우리는 종종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또한 향수병에도 걸렸다. 그런데 매일 아침, 선수들의 눈빛을 보면 힘이 났다. 한국에는 없는 눈빛이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라 다른 코치들도 그렇게 느꼈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 베트남 선수들에게 많은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베트남 선수는 약골이라는 편견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 편견을 바꾸고 싶다.”

_매번 어려운 경기였다. 선수들에게 어떤 주문을 했나.

“경기장에서의 소통을 강조했다. 경기장 밖에서는 너무나 행복한 모습으로 시끌시끌하게 이야기하는 선수들이 필드에만 들어가면 서로 말을 안 한다. 서로 뒤를 봐줘야 되고, 라인이 안 맞는다든지 이런 것들은 주변에서 서로서로 알려줘야 한다. 누차 강조해서 지금은 기대치의 60% 수준에 왔다. 아직 40이 남았다.”

지난 27일 중국 창저우 올림픽 스포츠 센터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U-23(23세 이하) 챔피언십 결승에서 우즈베키스탄에 연장 접전 끝에 1-2로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하지만 현지에서는 팀을 이끈 박항서 감독의 리더십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다. VN익스프레스 캡쳐
지난 27일 중국 창저우 올림픽 스포츠 센터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U-23(23세 이하) 챔피언십 결승에서 우즈베키스탄에 연장 접전 끝에 1-2로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하지만 현지에서는 팀을 이끈 박항서 감독의 리더십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다. VN익스프레스 캡쳐

_많은 사람들이 선수들의 ‘아버지’ 같다고 이야기 한다. 거리감 줄이기 위해 기울인 노력이 있다면.

“나는 베트남에 올 때 한국에서의 2002년도 영광 같은 건 다 내려놓고 왔다. 나는 ‘우리’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자식이 잘못되면 부모 책임이다. 동양 문화에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부모들에게 있고 그렇게 만들기 위한 책임감 같은 게 있지 않나. 선수들에게 감독은 형이 될 수도 있고, 아버지도 될 수 있어야 한다. 솔선수범하면서 같이 뒹굴었다.”

_극적인 승부차기였다. 승부차기 준비는 어떻게 했나.

“많은 연습을 했고, 시나리오를 갖고 있었다. 선수들에게 특별히 한 말은 없다. 다만, 베트남 (결승행을 결정 지은) 카타르전에서 5번 키커 반 탕 선수는 원래 2번이나 4번에 넣으려고 했던 선수인데, 5번을 하겠다고 나섰다. 경험도 있어야 하고 심장도 강해야 하는, 굉장히 부담되는 자리다. 본인도 그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고, 자신도 있다고 해서 넣었는데 성공했다.”

_골키퍼 역할이 컸다. 특별히 주문한 것이 있다면.

“골키퍼의 작은 실수에도 필드 선수들은 흔들린다. 부이 띠엔 퉁한테는 ‘내가 바위처럼 지키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동료들이 안심하고 경기를 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_카타르와 준결승전 승부차기에서 1번 키커 꽝 하이한테 다가와서 뭐라고 이야기를 했다.

“고개 숙이고 풀 죽은 모습 보이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순서 결정은 내가 했고, 선수는 실행만 하면 된다. 선수는 그걸 성공시킬 의무가 있다. 집중하라고 이야기 했다.”

23세 이하(U-23) 베트남 대표팀 박항서 감독이 27일 중국 창저우 올림픽 스포츠 센터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결승 경기에서 눈을 맞으며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창저우=VNA 연합뉴스
23세 이하(U-23) 베트남 대표팀 박항서 감독이 27일 중국 창저우 올림픽 스포츠 센터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결승 경기에서 눈을 맞으며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창저우=VNA 연합뉴스

_결승전 당시 경기장에 눈 많이 왔는데, 연기 요청해야 했던 거 아닌가.

“연기 요청했다. 나도 했고 베트남축구협회에서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선수들이 모두 거기 추운 지방인 건 알고 갔다. 하지만 우리가 눈 때문에 졌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서 이야기 안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 이야기를 해서 AFC에서 징계 받을지 모르지만, 그날 경기는 연기되는 게 맞다. 규정이 있다. 전반 종료하고 한 시간 동안 쌓인 눈을 치우느라 경기 시작을 못했다. 그 와중에 왜 경기를 감행했는지는 이해하기는 힘들다.”

_연장 후반 종료 1분 남겨놓고 진 뒤에 혼자 벤치에서 무슨 생각했나.

“우리 선수들이 처음 겪는 환경에서 120분 중 119분 잘했다. 막판에 집중 못해서 진 데 대한 허탈감이 있었고, AFC에 대한 원망도 있었다. 그런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와서 그냥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경기는 철저하게 AFC편의에 맞춰 진행됐다. 다들 지쳐 있는데 바로 시상식을 한다고 하지 않나. 불만이 좀 있었다.”

_우즈벡과의 결승전 후 누구랑 제일 먼저 통화했나

“아내다. 어머니한테 먼저 하고 싶었지만 못했다. 걱정을 하도 많이 하셔서 전화 잘 안 했다. 어머니 안부는 주로 형님한테 전화 해야 이야기 듣는다.”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의 어머니 박순정(96) 씨가 29일 경남 산청군 산청읍의 한 요양원에서 "아들 보러 베트남 가고 싶다"라며 바람을 말하고 있다. 산청=연합뉴스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의 어머니 박순정(96) 씨가 29일 경남 산청군 산청읍의 한 요양원에서 "아들 보러 베트남 가고 싶다"라며 바람을 말하고 있다. 산청=연합뉴스

_하노이 노이 바이 국제공항에 내려서 하노시 시내까지 오는 길에 무슨 생각이 들었나.

“한국 언론 통해 분위기 대강 알고 있고 선수들이 보여준 유튜브 통해서 보기는 했다. 그러나 공항에 도착해서까지도 실감을 못했다. 2002년도에 비슷한 경험도 있고 해서 그냥 그랬다. ‘지금 하노이 시내가 난리가 났다고 하는데, 과연 축구 때문에 그럴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 길거리에 응원 나온 사람들 보면서 베트남 사람들이 축구를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구나, 대표팀 감독으로서 부담이 엄습했다.”

_이번 성공이 ‘운’이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운이 좋다고 이야기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운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운은 한 두 번이지, 결승전까지 밀어 올릴 수 있는 것은 못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정상까지 온 건 아니지만, 감독으로서 이번 성과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더욱 중요한 곳에 섰다는 것이다. 이번 대회를 통해 국민들의 기대치도 높아졌다. 베트남 축구의 위상도 높아졌다. 선수들, 감독, 지도자, 축구협회 등 모든 이들이 지금보다 배 이상으로 노력해야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고, 지금의 위상을 지킬 수 있다.”

_선수들의 인기가 엄청나다.

“축구 선배로서, 감독으로서 말하건대, 교만해져서는 안 된다.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여기서 만족하면 안 된다고 당부하고 싶다. 소집 해제되면 모두 흩어질 것이다. 초심 잃지 않도록 계속 메시지 전달할 것이다. 국민들의 기대치 높아진 것 모두 봤을 것이다. 대표 선수라면 그런 기대에 부응해야 할 책임감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 책임감 없으면 대표 선수 자격이 없다. 우리 선수들이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