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현식 의사 직전 일터인 세종병원의 “일손 부족” 외면 못해 지원 당직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참사의 유일한 1층 사망자인 행복한병원 의사 민현식(59)씨는 지난 26일 당직 근무 지원을 갔다 불길을 만났다. 민씨는 김점자(49) 책임간호사, 김라희(37) 간호조무사 등과 함께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대피를 위해 애쓰다 1층 응급실 주변에서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그는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 행복한병원 소속 정형외과 과장이다. 그를 아는 환자들은 “평소 인성 좋기로 유명하신 분”, “남편 수술 때문에 만났는데 너무 좋은 분”이라며 안타까워했다.
28일 행복한병원 1층 민씨의 진료실. 그가 진료를 위해 기록한 차트와 모니터를 가득 채운 메모지, 이름 석자가 선명한 가운 등이 기약 없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행복한병원은 산부인과, 내과, 정형외과가 핵심 진료과목으로 민씨는 지난해 2월부터 1년 가까이 정형외과 과장으로 근무했다.
민씨는 이곳에서도 2, 3일에 1번씩 번갈아가면서 야간 당직을 섰다. 야간 환자가 많지는 않지만, 의사가 야간 근무를 서는 병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밀양 지역 특성상 어르신 환자들이 찾아올 수도 있다는 병원장 방침 때문이었다.
민씨는 다정하고 책임감이 강했다. 사건 당일 “일손이 부족하다”는 세종병원의 SOS(구조요청신호)에 그는 원포인트 야간 당직 지원을 마다하지 않았다. 민씨는 행복한병원 과장 근무 직전 세종병원에서 야간당직 의사로 근무를 했던 터였다. 행복한병원 관계자는 “병원 과장이 해당 근무 병원 외에 야간 당직을 서는 경우가 드물지만 일손이 부족하자 전임자 민씨에게 부탁을 한 것 같다”고 추측했다.
사건 당일 행복한병원에서는 평소 지각하는 법이 없던 민씨가 출근시간을 훌쩍 넘겨도 출근하지 않자 비상이 걸렸다. “가끔씩 일손이 부족한 세종병원에 야간 당직을 지원했다”는 직원의 말에 장례식장을 모두 수소문한 끝에 이날 오후에야 사망자 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진국 행복한병원 원장은 “평소에도 꼼꼼하게 교과서적으로 환자들을 대했던 만큼 사건 현장에서 다른 환자들을 챙기면 챙겼지 혼자 도망갈 사람은 아니다”며 “다른 병원 당직을 서지 못하게 말렸더라면 이번 참변을 막았을 수 있었을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병원 측은 경남도의사회를 통해 어렵사리 유족과 연락했다.
민씨는 정형외과 전문의를 역임한 아버지를 따라 진주고와 중앙대 의대를 나와 한림대 조교수, 세종병원 등을 거쳐 지난해 2월부터 행복한병원 정형외과 과장으로 근무해 왔다. 경기도에 있는 아내(55)와 두 아들과는 떨어져 밀양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었다.
유족들은 사건 당일 급하게 밀양으로 내려와 현재 민씨의 장례절차를 준비 중이다. 28일 사건 발생 3일째지만 아직 민씨의 시신은 밀양 새한솔병원에 안치되어 있다. 밀양 시내 장례식장이 부족한 탓이다. 29일 빈소가 꾸려진다.
밀양=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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