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 응급실 천장에서 발화”
신고 3분 만에 소방대 도착했지만
고령 환자들 빨리 대피 못해
스프링클러도 없어 고질적 인재
범정부 통합지원본부 구성
26일 대한민국의 안전이 또다시 화마 앞에 처참히 무너졌다. 이번엔 병마를 딛고 일어서 가족 품으로 돌아가겠다는 고령의 환자들이 입원해 있던 병원이었다. 검은 화염과 유독가스가 환자 177명이 입원해 있는 병실을 덮쳐 37명이 숨지는 대참사가 빚어졌다. 지난해 12월 21일 충북 제천 노블휘트니스 스파 화재 참사가 터진 지 한 달여만에, 정부가 “국민의 안전과 안심을 지켜드리겠다”며 호기롭게 ‘국민안전대책’을 내놓은 지 불과 사흘만이다.
180명의 사상자를 낸 경남 밀양시 가곡동 세종병원 화재 참사는 이날 오전 7시30분쯤(추정) 1층 응급실 천장에서 시작됐다. 간호조무사 이순연(48)씨는 “응급실 천장에서 ‘탁’하는 불이 났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실제 응급실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엔 출입구 안쪽 천장에서 불꽃이 튀는 장면이 그대로 담겨 있다. 이번 화재도 고질적인 인재(人災)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불은 순식간에 5층짜리 병원 건물 전체로 번졌다. 밀양소방서 선착대가 화재 신고 3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지만 병원은 이미 검은 연기와 화염에 휩싸였다. 소방서 측은 오전 9시29분 큰 불길을 잡은 데 이어 10시26분 완전 진화했다.
그러나 응급실과 2~5층 병실에 있던 환자 대부분이 고령이거나 골절과 뇌졸중 등 중증 노인성 질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탓에 신속한 대피가 쉽지 않아 대형인명 피해가 났다. 다행히 불이 난 병원과 맞붙은 별관동인 세종요양병원의 입원환자 94명은 전원 대피해 별다른 부상을 입지 않았다. 화재 당시 당직 의사 1명을 포함해 모두 9명이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었지만 자체 진화와 환자 구조에 나서기엔 역부족이었다. 되레 이 과정에서 의사와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 의료진 3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이번 화재도 소방시설기준의 허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정부는 경북 포항 노인요양시설 화재 사고와 전남 장성 요양병원 화재 사고를 계기로 소방시설 설치 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소방법) 시행령을 개정해 노인ㆍ장애인 요양시설에 대해서는 건물 면적에 상관 없이 간이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도록 했지만 일반병원으로 분류되는 세종병원은 의무설치 대상에서 제외됐다. 대형 참사가 반복되고 있지만 정부의 대응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던 셈이다.
사고 때마다 국민들에게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리며 제도 개선 등을 외쳤지만 항상 그 때뿐이었다. 지난 23일 이낙연 국무총리는 국민 안전을 주제로 진행한 정부 업무보고에서 “안전과 안심을 해치는 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런 흐름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고 했지만, 그 위태로운 흐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한편 정부는 소방청에서 운영하던 중앙사고수습본부를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운영하고 행정안전부는 관계부처, 지방자치단체와 합동으로 범정부 통합지원본부를 구성키로 했다.
밀양=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전혜원기자 iamjhw@hankookilbo.com 김형준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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