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구 인근 1층 응급실 불 번지자
거동 불가능한 2층 환자들
1층으로 구조하다 유독가스 흡입
“병원에 특화된 소방법 규정 필요”
“1층에서 불이 났는데 1층으로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면 그건 병원시설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요.”
26일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사고 사망자가 대부분 탈출 중 유독가스를 마신 것이 원인으로 드러나면서 화재 등 비상상황 발생 시 병상환자를 이동시킬 별도의 우회 대피 경로가 없었던 병원의 구조적 문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37명의 사망자와 143명의 부상자를 낸 이날 세종병원 화재에서 직접 불길(화염)에 노출돼 사망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은 급박했겠지만 유독가스 흡입에 의한 질식사 등의 위험만 줄였더라도 이렇게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진 않았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대부분 사망자는 주로 1, 2층에 있었고, 일부는 5층에 있었던 것으로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눈 여겨 봐야 할 점은 사망자 가운데 상당수가 탈출 중 목숨을 잃었다는 것. 세종병원 본관의 경우 100여명이 화염을 피해 시설을 빠져 나오는 데는 성공했으나 상당수가 유독가스를 흡인해 중태에 빠진 상황에서 병원으로 이송됐다.
세종병원의 비상구는 한 곳으로, 인접 요양병원(별관) 건물과 연결하는 쪽 통로에 설치돼 있다. 하지만 이날 화재가 응급실에서 발생, 비상구 연결 통로로 유독가스가 확산되면서 사실상 대피로를 차단했다. 더욱이 이 연기가 비상구 연결통로로 빨려 올라가는 굴뚝효과로 인해 위층 환자들조차 대피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이 건물에 별도의 비상구가 있었다면 그나마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가능성이 점쳐지는 대목이다.
이날 당직근무 중 화재발생을 목격한 간호조무사 C씨에 따르면 1층 응급실에서 원무과 당직자 2명이 소화기를 들고 초기 진압에 나섰으나 역부족으로 불이 번졌다. C씨는 “이후 소방차가 오고 사다리 등을 이용, 2층 환자들을 이송하기 시작했는데, 2층 30여명의 환자 가운데 거동이 가능한 20여명만 건물 창문 등을 통해 사다리로 구조했다”고 설명했다. 거동이 불가능한 병상환자는 유독가스 흡입 위험을 무릅쓰고 1층으로 구조할 수밖에 없었으며, 일부 환자는 스스로 탈출을 시도하다 유독가스에 질식해 숨진 것으로 보인다. 최만우 밀양소방서장은 “당시 사망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환자 6명이 1층 엘리베이터 안에서 갇힌 상태에서 발견돼 바로 이송 조처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없는 병상환자가 많은 병원시설은 일반건물과 다른 별도의 소방법 규정이 필요하며, 다양한 상황을 대비한 비상용 승강기 및 피난계단 설치와 피난계획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와 관련 손경철 세종병원 이사장은 “소방점검은 주기적으로 받았으며, 내장재는 건축법에 저촉되지 않도록 했다”며 “또 소방대피훈련 매뉴얼에 따라 수시로 소방훈련을 했으며, 각 층별로 환자구조대비 훈련도 실시했다”고 말했다. 법적 기준을 어긴 적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날 화재진압을 지휘한 최만우 밀양소방서장은 “적은 당직 인원으로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 대피시키기 어려웠다”며 “대피 매뉴얼이 있었지만 막상 화재 발생하자 별다른 안내도 없이 우왕좌왕했고, 급한 나머지 환자 등에 업고 계단으로 내려오는 요양사도 있었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밀양= 목상균 기자 sgmok@hankookilbo.com ㆍ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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