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온도가 영하 20도에 육박할 정도로 세상이 꽁꽁 얼어있던 26일, 정현(22ㆍ랭킹 58위)을 응원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의 열기는 호주오픈이 열리고 있는 멜버른 날씨(최고온도 29도)만큼 뜨거웠다. 결과는 다소 아쉬웠지만, 시민들은 ‘황제’ 로저 페더러(37ㆍ2위ㆍ스위스)와 당당히 맞붙는 정현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자랑스러워했다.
오후 5시 30분(한국시간)에 시작한 호주오픈 준결승전을 위해 서초구 서울고 대강당에는 대한테니스협회에서 마련한 단체응원전이 펼쳐졌다. 경기 시작 1시간여 전부터 ‘제2의 정현’을 꿈꾸는 테니스 유망주들은 물론 주민들과 테니스 동호인들까지 300여명의 사람들이 설레는 얼굴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얼굴 가득 정현을 응원하는 문구를 그리고 온 동호인 윤지수(35)씨는 “역사적인 경기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켜보고 싶어 네 시간에 걸려 왔다”면서 “테니스를 치는 사람들에게 정현은 영웅”이라고 말했다. 경기 시작 10분 전, 설치된 화면에 정현의 모습이 등장하자 한 목소리로 환호하던 시민들은 경기 시간이 임박하자 이내 긴장된 모습을 숨기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두 손을 마주잡은 채 눈을 감고 기도를 하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경기 시작 직후, 정현이 점수를 딸 때마다 객석 곳곳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와 함께 “렛츠 고(Let’s go) 정현 렛츠 고!”라는 응원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점수가 뒤질 때에도 힘을 실어주려는 듯 박수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대형 태극기를 가져와 흔들던 동호인 김모(50)씨는 “골리앗과 맞서 싸우는 다윗을 응원하는 심정으로, 이 순간만큼은 국민들이 하나가 된 기분”이라며 즐거워했다.
“아…” 경기 시작 한 시간여 만에 정현이 기권을 선언하자 탄식이 흘러나왔다. 시민들은 당황해 하며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두운 표정으로 자리를 뜨는 시민도 있었다. 초등학생 자녀 두 명과 함께 서울고를 찾은 김명자(43)씨는 “아쉽지만, 선수가 많이 아프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며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다음 대회를 노리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단체응원전에 함께하지 못한 시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마음을 졸였다. 서대문구 연희동의 한 스포츠 펍에서 근무하는 고모(27)씨는 “정현 경기 시간대에는 이틀 전부터 예약이 차 있었다”면서 “매장 안 10개가 넘는 화면에 모두 테니스 경기가 틀어져 있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공기업에 근무하는 남승희(28)씨는 “퇴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모두 정현 경기에 집중하느라 퇴근을 안 하더라”면서 “결과는 아쉽지만 정현 선수가 모처럼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줘 고마운 마음이 든다”며 웃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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