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스케이팅에서 의상이 연기의 한 부분으로 간주되면서 선수들도 점점 의상 선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의 하뉴 유즈루가 2014 소치동계올림픽 남자 싱글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입었던 의상 비용은 3,000달러(약 322만원)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겨 여왕’ 김연아는 출전한 대회마다 ‘베스트 코스튬’으로 뽑혔다.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007 테마곡에 맞춰 ‘본드걸’을 연기했을 때 입은 의상은 장식에만 200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한 외국 해설가는 이 의상을 보고 “마치 구스타프 클림트(오스트리아 화가)의 그림 같다”고 감탄했다. 밴쿠버올림픽 때 김연아가 입었던 의상은 약 160만원대였다. 피겨 의상 제작엔 선수, 안무가도 참여한다. 디자이너는 배경음악을 듣고 선수의 연기 영상도 본 뒤 선수, 안무가와 함께 색깔 등을 논의해 의상을 만든다.
의상은 연기와 얼마만큼 일체감을 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최다빈은 지난해 2월 강릉에서 열린 국제빙상연맹(ISU) 4대륙 선수권대회에서 쇼트프로그램 배경음악을 영화 ‘라라랜드’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으로 바꾸면서 의상도 영화 여주인공이 입은 드레스와 같은 녹색으로 교체했다. 새 의상을 입은 최다빈은 쇼트프로그램에서 자신의 ISU 대회 최고 기록(61.62점)을 세웠다.
피겨스케이팅 의상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선정성이다. 초창기 피겨엔 별다른 복장 규정이 없었다. 그러다 ‘원조 피겨 여제’ 카타리나 비트(53ㆍ당시 동독)가 1988년 캘거리올림픽 쇼트프로그램에서 깃털로 장식한 파란색 드레스를 입고 연기했는데 당시로선 파격적인 짧은 하의를 입고 나왔다. 당시 일부 언론은 비트의 의상을 두고 '브라질 코파카바나 해변을 거니는 여자 같다'고 눈살을 찌푸렸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은 대회 이후 '여자 선수는 반드시 엉덩이 부분을 덮는 치마를 입고 스타킹을 착용해야 한다'는 이른바 '카타리나 룰(rule)'을 만들었다. 카타리나 룰의 문구는 2004년 ISU가 복장 관련 규정을 다시 손보면서 사라졌다. 바뀐 규정에 따르면 여자 선수는 치마는 물론 바지를 입어도 상관없다. 페어 종목에서 남녀가 모두 바지를 입고 나와도 된다. 다만 남자 선수는 종목에 상관없이 바지만 착용할 수 있다.
ISU는 과도한 노출엔 '1점 감점'을 규정하고 있다. 규정 501조에 따르면 각종 인터내셔널대회에서 선수들의 의상은 운동에 적합하고 기품 있으며 적당한 정도를 지켜야 한다. 선택한 음악의 성격을 반영할 수는 있으나 디자인이 야하거나 과장되지 않아야 하며, 규정에 적절하지 않은 지나친 노출효과를 주면 안 된다. 하지만 노출 정도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 없기 때문에 일부 선수는 심판과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점점 파격적인 의상을 찾는 추세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