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물ㆍ재능 기부자를 기피
무성의한 업무처리 도마에


박성준(43·가명)씨는 지난달 말 대구 서구청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쌀 20가마와 난방용품 40개를 저소득층에 기부하려고 갔더니 “물건을 보관할 장소가 없으니 연락을 하면 가져와라”는 공무원의 답변이 돌아왔다. 박씨가 “저소득층 이웃의 주소를 알려주면 직접 가져다 주겠다”고 했더니 “연락을 하면 가져와라”는 말 뿐이었다. 그 뒤 서구청에서는 아무 연락도 없었고 박씨는 다른 곳에 기부했다.
공공기관의 무성의한 기부 관련 업무처리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업무처리가 쉬운 현금과 달리 현물이나 재능기부는 절차가 번거롭다는 이유로 기부자가 눈치를 봐야 하는 경우도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쌀 기부에 미온적이었던 서구청 관계자는 “현물을 기부할 경우 피기부자에게 모두 전달된 후에야 영수증이 발급되기 때문에 올 1월에 기부토록 배려한 것이 오해를 산 것 같다”며 “그 후 박씨로부터 연락이 없어 처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박씨는 “당시 공무원에게 ‘기부 영수증은 필요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물건을 보관할 장소가 없다고 거절해 놓고 무슨 딴소리냐. 8년 넘게 기부를 하면서 한 번도 영수증을 받은 적이 없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수성구청도 마찬가지였다. 메이크업 학원을 운영하는 고희자(43·가명)씨는 지난해 가정형편 때문에 메이크업 학원에 등록을 못하는 이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성구청에 재능기부를 신청했다. “구청에서 가라고 해서 왔다”는 수강생은 시간만 보내다 며칠 뒤에는 아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고씨는 그 후에도 수 차례 재능기부 제안을 했으나 응답은 없었다. 고씨는 다른 기관에 연락해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수성구청 담당자도 “지난해 학원에 보냈던 수강생이 적응을 하지 못해 그만둔 것은 알고 있다”며 “재능기부는 목적에 적합한 대상자를 찾기 쉽지 않다”고 해명했다. 이들 공무원들은 “업무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는다” “내 업무가 아니다”며 기부에는 소극적으로 일관했다.
한 시민은 “기부문화를 선도해야 할 공공기관이 행정편의주의에 빠져 기부를 등한시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복지기금을 늘이는 것보다 공무원 의식개선이 우선”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한 공공기관 복지담당자는 “해마다 현물과 현금, 재능 등이 기부되고 있으나 현물과 재능기부는 절차가 번거롭고 업무가 까다롭기 때문에 담당자들이 등한시하는 경우가 있다”며 “기부절차를 간소화해서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기부문화에 붐을 일으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16일까지 접수된 이웃돕기 성금이 92억8,000여 만원으로, 전국 최초로 ‘나눔 온도 100도’를 달성하는 등 전년 동기 83억8,000여 만원보다 11% 많은 금액이 모여졌다.
하지만 공공기관의 기부를 보면 큰 차이가 없다. 지난해 서구청 기부는 현금 1억5,000여 만원, 현물 2억1,900여 만원으로 2016년 현금 8,800여 만원, 현물 2억8,000만원에 비해 현금 비율은 2배 정도 상승했으나 현물은 6,000여 만원이나 줄었다. 수성구청도 지난해 현금 15억1,500여 만원 현물 3억6,900여 만원으로 현금 기부가 월등히 많다.
이들 기관에 따르면 구청마다 영수증 처리와 절차가 다르기 때문에 특정 분야에 지정기탁도 할 수 있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한 기부가 활성화하고 있다.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김찬희 대리는 “현물 기부의 비중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기부자 뜻대로 배분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기부자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기 위해서는 관련 기관들의 세심한 업무처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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