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21ㆍ세계 58위)이 한국 테니스 역사를 또 새로 썼다.
정현은 24일(현지시각)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오픈 테니스 남자단식 8강전에서 미국의 테니스 샌드그렌(26ㆍ98위)을 3대0(6-4, 7-6<7-5>, 6-3)으로 꺾고 준결승(4강)에 진출했다. 이틀 전 세계랭킹 1위 출신 노박 조코비치(30ㆍ세르비아)를 물리친 데 이어 이번 대회에서 세계 랭킹 상위권 선수들을 잇달아 격파하며 ‘무명의 반란’을 이끈 샌드그렌까지 넘어선 것이다. 한국 테니스 선수가 4대 메이저 대회(호주오픈, 프랑스오픈, 윔블던, US오픈) 4강에 진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선 8강 진출도 정현이 최초였다.
과거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정현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7가지를 정리했다.
1. 정현의 아버지는 테니스를 반대했다
정현은 아버지 정석진(52)씨 권유로 약시(별 다른 이상이 없는데 교정시력이 나오지 않는 상태) 치료를 위해 7살 무렵 처음 테니스 라켓을 잡았다. 테니스 코트에서는 눈에 좋은 초록색을 자주 볼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아버지 정씨는 정현의 테니스 시작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형 정홍(25)씨와 행보가 겹쳤기 때문이다.
정현 : 아버지는 두 아들 중 한 명은 테니스 말고 공부하길 바라셨다. 형(정홍)이 테니스를 하니까 부모님은 내 인생의 방향을 공부에 맞춰놓고 계셨다. 그러나 운명의 끈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아버지가 심하게 반대하셨지만 내 고집을 꺾지 못하셨고, 결국엔 내 뜻대로 테니스를 계속 할 수 있었다. (2015년 5월 4일 헤럴드스포츠 이영미 대표기자와의 인터뷰)
2. 정현의 ‘약시’는 오히려 테니스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됐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좋은 일은 나쁜 일로, 나쁜 일은 좋은 일로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정현의 경우가 그랬다. 어머니 김영미씨는 정현이 어릴 때부터 앓아온 약시가 오히려 테니스 선수로선 장점이 됐다고 설명했다.
김영미 : 테니스 관계자들은 현이의 강점 중 하나로 동체시력(움직이는 물체를 보는 시력)을 꼽는다. 그런데 그 원인이 바로 약시 때문이다. 시력이 좋지 않아 사물을 볼 때 일반인들보다 더 집중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동체시력이 발달한 것이다. (2013년 7월 9일 뉴시스와의 인터뷰)
3. 바나나를 5게임에 1번씩 먹는다
체력 소모가 큰 테니스 선수들은 경기 중 틈틈이 간식을 챙겨먹는다. 체력 보충 효과가 뛰어난 바나나가 대표적이다. 정현도 바나나를 즐긴다. 그런데 마구잡이로 먹는 게 아니고, 나름의 규칙이 있다.
기자 : 세계적인 선수들을 보면 그들만의 버릇이나 루틴(독특한 행동)을 가지고 있던데요. 서브 전이나 게임 전에 꼭 하는 습관이나 루틴이 있나요?
정현 : 그런 것은 특별히 없고, 5게임에 한번씩 바나나를 먹는 정도에요. (2014년 7월 4일 영국 윔블던 주니어 단식 8강 진출 뒤 언론 인터뷰)
4. 병역 문제는 이미 해결됐다
정현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테니스 남자 복식 금메달을 따냈기 때문에 병역 문제도 해결했다. 현행 병역법은 올림픽에선 3위까지, 아시안게임에선 1위를 한 선수에게 병역 특레 혜택을 주고 있다. 다만 4주 기초군사훈련은 참가해야 한다. 정현은 2015년 11월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쳤다.
5. 양치질 뒤 딱 6번만 입을 헹군다
역시 루틴의 일종이다.
아이들 : 긴장될 때 하는 루틴이 있어요?
정현 : 긴장되면 마음을 가라앉히고, 주문을 외우기도 해. 1년 365일 하는 루틴은 양치질을 하고 6번 헹구는 거야. (2017년 11월 한국체대에서 열린 주니어 선수들과의 원 포인트 레슨 행사 때)
6. 영어 실력 키우는 데는 ‘미드’ 도움이 컸다
‘영어 왕초보’였던 정현은 최근 1~2년 사이 영어 실력이 급성장했다.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도 이젠 유창한 영어로 소화한다. 이런 ‘일취월장’의 비결은 그의 투어에 종종 동행하는 친구 ‘데이비드 현도’가 낸 숙제 때문이라는 게 정현의 설명이다.
정현 : 현도는 내게 ‘미국 드라마’를 보라는 숙제를 내줬어요. 그래서 나는 ‘프리즌 브레이크’, ‘모던 패밀리’를 봤죠. 지금도 영어 공부를 하고 있어요. (2016년 10월 3일 두바이 스포츠 매체 ‘스포트360’과 인터뷰)
7. 코트 밖에선 테니스의 ‘테’ 자도 안 떠올린다
그래야 경기 리듬을 찾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코트에 들어갔을 때 리듬을 못 찾으면 생각이 많아져서 경기가 더 꼬인다. 생각을 단순하게 하기 위해 코트 안과 밖의 삶을 확실히 구분 짓기로 했다. (중략) 코트 밖에서는 라켓도 잡지 않고, 테니스 영상도 안 본다. 예전에는 테니스 비디오를 보면서 연구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지금은 달라졌다. 코트 위에서 뛰는 내 모습을 보는 게 부끄럽기도 하다. (2017년 11월 17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
양원모 기자 ingodzo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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