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누신 美 재무장관 다보스포럼서
“무역과 기회 측면에서…”
발언 직후 세계 환율시장 요동
원ㆍ달러 환율도 3여년 만에 최저
미국이 통화전쟁의 불을 댕겼다. “달러 약세가 미국에 좋다”는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의 말 한 마디에 세계 금융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 조치 발동으로 무역전쟁의 포문을 연 데 이어 므누신 장관이 통화전쟁까지 촉발하는 모양새다. 원ㆍ달러 환율은 3년2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므누신 장관은 24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무역과 기회 측면에서 확실히 달러 약세가 미국에 좋다”고 밝혔다. 발언 직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0개월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하며 89.2로 마감했다. 달러인덱스는 25일에도 하락세가 이어졌다. 달러인덱스가 90포인트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14년 12월 이후 3년여 만이다. 달러인덱스는 이미 연초 대비 3% 가량 떨어졌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도 전날 대비 11.6원이나 하락한 1,058.6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 보면 2014년 10월30일 1,055.5원 이후 가장 낮았다. 오후 12시 45분께는 달러당 1,057.9원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달러 대비 엔화도 전날 대비 하락, 달러당 108엔대에 거래됐다.
므누신 장관의 발언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강조한 ‘미국 우선주의’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무역 분야에서 보호주의를 표방한 트럼프 대통령에 이어 므누신 장관도 약한 달러로 자국 기업의 수출을 지원하면서 외국 기업에 타격을 입힐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특히 므누신 장관의 발언이 전날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 등에 세이프가드가 발동된 직후 나왔다는 점에서 이러한 시각에 힘이 실리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므누신의 약한 달러 발언을 두고 “워싱턴이 경기 부양을 위해 통화 가치를 떨어뜨릴 방안을 강구한다는 의심이 제기된다”고 평가했다. 그 동안 표면적으로는 강한 달러 기조를 견지하고 환율은 시장에 맡긴다는 신호를 보내온 미 정부가 아예 노골적으로 환율에 개입하고 나섰다는 이야기다.
미국발 환율전쟁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CNBC뉴스는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달러 약세에 따른) 유로화 강세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로화 강세로 대미 수출에 불리해진 유럽 기업들의 불만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대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달러 약세가 결국 미국에게도 큰 손실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로이터는 “달러 약세는 또다른 의미에서는 미국 주식과 회사채, 다른 위험투자 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해외 자본이 급격히 빠져나갈 경우 미국 투자 시장에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달러 약세 기조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봤다. 이은택 KB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단기적으로 달러 약세가 지속될 것으로 미국 이외 국가들의 통화정책에 혼란이 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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