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신년회견서 트럼프 폭력성 재현
홍 리더십 부인하는 보수층 여론 주목
'기승전-좌파' 타령 평창 후 힘 받을 수도
미국 트럼프 대통령 주변 핵심인물들을 2년 가까이 취재해 트럼프 백악관의 내밀한 얘기를 까발린 책 '화염과 분노'로 마이클 울프가 명성과 함께 돈방석에 앉자 트럼프의 분노는 화염으로 치달았다. 참모들의 말을 인용, 트럼프의 정신상태가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 부적절하다는 주장을 편 까닭이다. 새해 첫날 김정은의 '책상 위 핵단추' 위협에 '더 크고 강력하며, 작동까지 하는 핵단추'로 성급하게 맞대응해 연초부터 정신건강 논란을 자초한 트럼프로서는 무척 아팠을 것이다. 스스로 '안정된 천재'라고 강변하는 촌극까지 연출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진작부터 트럼프의 정신건강에 문제를 제기해온 한국계 미국인이 있다. 예일대 정신의학과의 밴디 리(한국명 이반디) 교수다. 그는 지난해 10월 전문의들의 분석을 담은 '위험한 트럼프'를 펴낸 데 이어 지난달엔 미 의회에서 트럼프의 정신감정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는 특히 충동성ㆍ무모함ㆍ피해망상ㆍ공감결여ㆍ자아도취 등 트럼프의 폭력성이 김정은과 다를 바 없다고 꼬집고, 이런 기질로 인해 발언이나 결정을 할 때 결과를 가늠하지 못하고 순간의 만족감만 즐긴다고 지적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새해 발걸음이 불안하다. 지난해 7월 취임 후부터 문재인 정부와의 본격적 전쟁 타이밍을 찾는다고 말해왔으나, 해가 바뀌도록 기회를 찾지 못한 데다 갑작스런 남북화해 기류로 인해 지방선거 분위기도 살아나지 않은 탓일 게다. 바른정당 탈당파를 흡수해 몸집을 불리고 새해 전국 순회 신년인사회로 기세를 올려도 사람이 모이지도 조직이 뭉치지도 않는 리더십 한계와 전략부재만 드러내고 있다. 책임을 돌리고 자리를 지키려다 보니 집착하는 게, 입버릇처럼 반복하는 이른바 문 정부의 언론장악 음모와 여론조사기관의 여론조작 프레임이다.
금주 초 홍 대표의 신년 기자회견은 실망스럽다 못해 참담했다. 그의 충동성과 피해망상, 무례함과 자화자찬은 넘쳐났으나 누구를 대상으로 왜 회견을 하는지 또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에 대한 고심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118석을 가진 보수당 대표의 신년 회견이 기행과 궤변으로 얼룩져 보수언론조차 외면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더 한심한 것은 그의 원맨쇼를 방관한 당의 무기력이다.
"풍전등화 안보와 역주행 경제 등은 좌파 국가주의 결과"라고 꼬집고 좌파 사회주의 개헌의 위험성을 경고했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안 없는 '기승전-좌파' 타령은 식상하고, 한마디 사과 없이 '6월 지방선거-개헌 국민투표 동시실시' 공약을 깬 만용만 돋보인다. 문 대통령의 회견 방식을 빌려 관심을 높이려던 시도는 거북하거나 불편한 질문을 피하는 홍 대표의 짜증과 열등감에 묻혔고, 특히 자신의 막말을 호도하며 되레 피해자들을 철부지 운운한 것은 그의 공감능력과 신뢰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런 홍 대표가 좋아할 뉴스가 하나 나왔다. 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취임 후 처음으로 50%대로 떨어졌다는 여론조사 결과다. 비트코인 혼선과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논란으로 지지층인 2030세대가 이탈한 결과라는 분석인데, 홍 대표가 이 결과도 과장됐다고 말할지 궁금하다. 정작 그가 신경 써야 할 뉴스도 있다. 퇴직 언론인 친목단체인 대한언론인회가 새해를 맞아 언론인과 언론학자, 언론유관기관 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다. 단체의 성격상 문재인 정부 8개월에 대한 평가가 박한 것은 예상대로지만, 눈길을 끈 것은 '헤매는 보수정당과 보수야당에 충고한다면'이라는 질문에 69%가 '보수우파를 결집시킬 새 리더를 찾아야 한다'고 답했다. 보수층이 그를 리더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선에서 24%를 얻은 홍 대표의 한국당 지지율은 지금껏 10% 안팎을 맴돌다 엊그제 처음 20%를 넘었을 뿐이다. 홍 대표의 가부장적 'TK 꼰대' 기질과 정신건강을 염려하는 영남권의 한 인사가 말했다. "홍 대표에게 한번의 기회는 있을 것 같아요. 평창올림픽 후 북한이 다시 불꽃 잔치을 벌여준다면..."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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