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위축 위기감에 개혁 선포식
이석구 국군기무사령관을 비롯한 기무사 간부 600여명이 25일 살인적인 한파를 온몸으로 맞으며 뜬금없이 ‘정치적 중립’을 서약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6ㆍ13 지방선거를 앞둔 다짐의 자리라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조직이 쪼그라들며 군 정보기관의 존립 자체가 흔들리는 것에 대한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다.
기무사에 따르면, 이 사령관을 위시한 간부들은 이날 서울 국립현충원에서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준수하고 고강도 개혁을 다짐하는 선포식을 열었다. 지방의 지역별 기무부대들도 같은 시간에 각 지역 충혼탑 등에서 똑같은 행사를 진행했다. 기무사가 본부와 예하 부대 간부들을 모두 동원해 이 같은 행사를 갖는 건 전례가 없다.
이날 선포식은 ‘기무사가 새로 태어난다’는 상징적 의미를 부각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청계산에서 기무사령부로 흐르는 물에 장군단이 손을 씻는 ‘세심(洗心)식’을 가진 뒤 각자 자필로 작성한 서약서에 손을 얹고 정치적 중립을 선언했다. 이어 간부들은 “잘못된 관행 개선, 정치적 중립 준수, 오직 국가와 국민에게만 충성하겠다”고 복창했다. 기무사 스스로가 마치 죄인이 된 마냥 굴욕적인 태도를 취한 셈이다.
하지만 이 같은 보여주기 식 행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기무사는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당시 정치 댓글 공작에 동원됐고, 지난 대선 때는 전직 기무사 지휘관 22명이 선도적으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공개 선언을 하면서 정치권 줄서기에 앞장섰다.
이날 행사 또한 정치적이라는 비판이 무성하다. 정부의 적폐청산 기조를 충실히 따를 테니 더 이상 기무사에 불이익을 주지 말아달라는 항변으로 비칠 수도 있다. 기무사 관계자는 “6ㆍ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데다 기무사의 개혁 의지를 재차 확인해야 한다는 내부 공감대가 컸다”고 말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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