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급작스레 사망한 CSX
검진결과 이사회에 통보 의무화
판단 미숙ㆍ기업가치 하락을 우려
경영학계서도 주요 이슈로 부각
미국 철도 대기업 CSX 이사회는 최근 다양한 경영 관행이 존재하는 이 나라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결정을 내렸다. 바로 회사는 최고경영자(CEO) 의사와 상관없이 그의 건강을 매년 꼼꼼히 점검해 보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3일 이 소식을 주요 기사로 전하며, CSX의 결정이 글로벌 대기업에서 핵심 이슈로 떠오른 ‘고령 CEO’ 문제의 잠재적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의료기술 발달과 평균수명 연장으로 예전 같으면 은퇴했을 60~70대 경영자가 고령에 따른 판단 미숙과 예상하지 못한 돌연사로 기업가치를 떨어뜨릴 위험을 막으려는 새로운 흐름이라는 것이다. 인도주의와는 거리가 먼 이 같은 ‘CEO 건강 챙기기’는 고령화가 심각한 세계 주요국에도 상당한 파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2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에 따르면 CSX는 이사회가 지정한 의료기관에서 실시한 CEO의 건강 검진 결과를 매년 확인해야 한다. CSX는 다음달 7일 열리는 이사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정관을 추가한다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보고했다.
CSX 이사회의 결정은 지난해 말 전임 CEO 헌터 해리슨이 예상치 못한 합병증으로 73세의 나이로 사망한 데 따른 것이다. 해리슨은 지난해 6월 주주총회에 산소통을 달고 나와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고, 이를 믿은 주주들은 8,000만달러(약 855억원) 규모 연봉을 승인했다.
현재 SEC는 기업들에게 주주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경영 사항을 신속하게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임원들의 건강 상태는 공개할 의무가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미 재계에서는 CEO 건강 상태는 사실상 ‘프라이버시’로 취급해왔는데, CEO의 건강 악화로 기업이 큰 손해를 보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다.
미국은 고령화 추세와 맞물려 고령 CEO가 늘고 있다. 미국 컨설팅기업 스펜서 스튜어트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S&P 500’ 지수 소속 대기업 CEO의 평균 연령은 10년 전보다 2살 많아진 57.4세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들 기업 중 65세 이상은 50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80대인 워런 버핏을 비롯해 70세 이상인 CEO도 19명이나 된다.
실제로 조그만 정보에도 주가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금융계에서는 CEO 건강을 공개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로이드 블랭크페인 CEO는 2015년 림프종 진단을 받은 후 이를 즉각 알렸고,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도 후두암 발병 사실을 대중에 알렸다.
이들이 빠른 설명으로 투자자들의 동요를 잠재운 건,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 발병 사실을 숨기는 바람에 애플 주가가 곤두박질쳤던 교훈 때문이기도 하다.
경영학계에서도 CEO 건강 문제를 주요 이슈로 공론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앨런 호위치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CEO 등 최고경영진은 이사회가 재량으로 건강 정보를 공개해도 좋다는 각서에 서명해야 한다”며 “SEC도 CEO 건강 정보를 공개하도록 수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령 CEO는 발병 가능성의 우려뿐 아니라 보수적 운영으로 경영 지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매튜 서플링 미국 애리조나 엘러 경영대 교수는 “고령 CEO는 젊은 CEO에 비해 위험 부담은 줄이려 하고 연구ㆍ개발 투자도 소극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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