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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포커스] 홍길동도 아닌데… 티아라를 티아라라고 왜 못 부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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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포커스] 홍길동도 아닌데… 티아라를 티아라라고 왜 못 부를까

입력
2018.01.24 04:4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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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ㆍ비스트 등 아이돌 그룹

전 소속사와 상표권 분쟁 겪어

이름 못쓰거나 새그룹명 활동

연습생 발굴부터 데뷔까지

업계 "투자한 게 얼마인데"

브랜드 가치는 함께 일군 것

"계약 끝나면 가수에게" 반론도

전 소속사와 팀 이름을 둘러싼 상표권 갈등을 빚은 아이돌그룹들. 티아라(사진 맨 위부터)는 전 소속사인 MBK엔터테인먼트가 특허청에 낸 '티이라 T-ARA' 상표권 출원 반대 제출서를 최근 냈다. 손동운 이기광 양요섭 용준형 윤두준은 비스트란 팀명 대신 하이라이트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신화는 3년 동안 팀 이름을 못쓰다 법원의 중재로 이름을 되찾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전 소속사와 팀 이름을 둘러싼 상표권 갈등을 빚은 아이돌그룹들. 티아라(사진 맨 위부터)는 전 소속사인 MBK엔터테인먼트가 특허청에 낸 '티이라 T-ARA' 상표권 출원 반대 제출서를 최근 냈다. 손동운 이기광 양요섭 용준형 윤두준은 비스트란 팀명 대신 하이라이트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신화는 3년 동안 팀 이름을 못쓰다 법원의 중재로 이름을 되찾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은 그룹 신화는 3년여 동안 이름 없이 살았다. 2012년에 준미디어(옛 오픈월드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팀명인 신화의 상표권 양도 소송을 낸 뒤 법원의 조정으로 2015년 5월 이름을 돌려받기까지 신화라는 이름을 쓸 수 없었다. 이 기간 신화가 낸 11집(2013)과 12집(2015) 표지엔 신화란 단어를 찾아볼 수 없다. 신화는 회사 이름까지 신화컴퍼니에서 신컴으로 바꿔 활동했다. 신화인데 신화가 아닌 것처럼 활동해야 했던 촌극이 벌어진 것이다.

#2 그룹 티아라의 멤버 은정과 지연 효민 큐리는 전 소속사인 MBK엔터테인먼트(MBK)와 팀명에 대한 권리를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MBK가 특허청에 ‘티아라 T-ARA’의 상표권을 출원하자, 네 멤버는 지난 17일 ‘MBK의 상표 등록이 거절돼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정보제출서를 냈다. MBK의 상표권 특허 취득을 막아 전 소속사와 향후 팀명 사용에 대한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이를 두고 제작단체들이 모인 한국대중문화예술산업총연합(문산연)이 ‘제작사의 권리와 재산에 심각한 침해’라며 티아라를 비판했지만, 티아라 측은 “상표 출원이 되면 다시 이의제기를 신청할 것”이라며 맞섰다.

한국에만 있는 ‘홍길동 아이돌 그룹’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슬픔을 타고 났다. 아버지와 피를 나눈 건 확실한데, 서자라는 신분 때문에 아버지를 함부로 입에 담지 못한다. 이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홍길동 가수’들이 가요계에 끊이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전 소속사와의 팀명 사용 협의가 원활히 이뤄지지 못해 제 이름을 쓰지 못하고 새로운 그룹명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이어지고 있다. 8년 동안 그룹 비스트로 활동하다 전 소속사 큐브엔터테인먼트와의 갈등으로 팀명을 하이라이트로 바꿔 활동하는 윤두준과 용준형 양요섭 이기광 손동운이 대표적인 ‘홍길동 아이돌’이다.

상표권 분쟁은 연예인들이 전 소속사를 떠나 다른 곳으로 둥지를 옮길 때 주로 발생한다. 아이돌그룹에 특히 빈번한 데 구조적 탓이 크다. 회사가 그룹의 기획을 주도 하다 보니 상표권에 있어 회사가 주도권을 쥘 수밖에 없다. 가수가 기획사와 전속계약을 맺을 때 ‘상표권은 회사가 소유한다’는 항목에 대부분 큰 경각심 없이 서명해 나중에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K팝 산업의 그늘이다.

K팝 아이돌 시장에서의 상품권 다툼은 영미권 음악 시장에서는 보기 드물다. 음반 제작과 매니지먼트 업무가 분리돼 한국처럼 기획사의 힘이 크지 않을뿐더러, 콘텐츠 제작도 가수 주도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김상화 음악평론가는 “(영미권의 경우) 상표권 분쟁도 소속사와 개인이 아닌 팀원 사이에서 벌어지곤 한다”고 말했다.

아이돌그룹 상표권 분쟁 사례

효력 없는 공정위 권고

업계에선 “상표권은 기획사 소유”라는 게 지배적인 시선이다. 기획사가 팀 이름을 짓고 기획해 연습생을 발굴하고, 데뷔하기까지 모든 투자를 감당하며 그룹의 연예 활동과 인지도 상승을 위해 노력했으니 상표권이 회사에 있어야 한다는 논리다. 김영진 문산연 회장은 “기획사의 팀명에 대한 소유권은 제작자의 권리 보호와 직결된 권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계약 기간(7년)이 끝난 뒤에까지 아이돌그룹의 상표권을 가요기획사에 일임하는 건 지나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신인그룹이 세상에 나와 인기를 얻는 데 멤버 개개인의 매력과 재능 없이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기획사에서 ‘좋은 곡’을 만들었다고 해도 누가 노래하고 춤을 추느냐에 따라 곡의 성패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명그룹에서 출발해 인기그룹이 되기까지의 공을 모두 기획사에만 돌릴 수 없는 이유다.

기획사는 아이돌그룹이 신인일 때 자신들에게 유리한 수익 분배로 투자금을 회수하는데 계약 종료 후 상표권까지 독점하는 건 ‘이중과세’가 될 수 있다. 김윤하 음악평론가는 “아이돌그룹이 인기를 얻어 쌓은 팀명에 대한 브랜드 가치는 기획사와 가수가 함께 이룬 것”이라며 “제조업체가 만든 제품과 달리 아이돌과 팀 이름은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어 분리해 생각할 수 없는 만큼 계약 종료 후엔 상표권 행사의 주도권은 가수에 옮겨져야 한다”고 봤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2014년 개정한 대중문화예술인 표준계약서에 ‘계약 기간이 종료된 후에는 상표권 등의 권리를 기획사가 가수에 이전한다’(8조)고 권고했다. ‘가수의 이름은 가수의 것’이라고 본 것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공정위의 주문이 법적 강제력이 없어 실질적으로 효력을 발휘하고 있지 않지만, 가요기획사단체와 가수협회 등이 상생의 방안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상표권 로열티 가이드라인 필요”

5대 가요 기획사(SM, YG, JYP, 큐브, FNC) 출신 한 아이돌이 새 둥지를 튼 한 기획사의 대표는 “전 소속사에 돈을 내고 상표권을 사왔다”고 밝혔다. 이 아이돌이야 큰 갈등 없이 상표권 문제가 해결됐지만, 기획사가 상표권을 내주지 않기 위해 수 억 원 대의 큰 돈을 요구하며 ‘몽니’를 부릴 수 있다는 게 문제다. 김헌식 동아방송대 교수는 “아이돌이 전 기획사에 상표권 사용료를 지불할 때 ‘수익의 몇%’를 낸다거나 기획사가 상표권을 팔 때 일정 금액을 넘을 수 없다 등의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라고 의견을 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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