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포당 최고 5,500만원 투자
밤에 빨간 불 켜지던 풍경
빵 냄새ㆍ꽃 향기로 채워져
“여기도 원래 ‘방석집’이었대요. 그런데 제가 들어오니까 위층에 사는 주민 분들이 좋아하시죠. 애들이랑 나갔다 들어올 때도 그렇고 분위기가 완전 다르다고요. 단골 손님들이 꽤 생겼어요.”
금속공예 공방 ‘메탈룸’을 운영하는 이소라(29)씨가 23일 서울 강동구 성안로의 한 건물 1층에 자리한 공방 구석 구석을 소개하며 말했다. 이 건물은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지금 같은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건물 1층 두 곳의 상점 자리엔 변종 유흥업소가 나란히 있었다. 지금은 그 자리를 이씨의 금속공예 공방과 이씨보다 먼저 들어온 가죽 공방이 대신하고 있다.
변화의 발단은 2016년 시작한 강동구의 ‘엔젤공방’ 사업이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변종업소를 퇴치할 묘안을 짜내던 중 공방 창업을 지원, 활성화해 거리를 자연스레 정비하는 동시에 일자리 창출도 꾀하자는데 생각이 모아졌다. 구는 특히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힘을 가진 공방의 특성에 주목했다.
모수진 구 사회적경제팀 주무관은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상점보다는 주민들이 동네 사랑방처럼 오고 가며 거리를 활성화할 수 있는 공방이 최적이라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난관은 건물주들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건물주들은 변종업소로부터 높은 임대료를 받아 왔기 때문에 구의 사업 제안을 그다지 내키지 않아 했다. 하지만 종국엔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도 변종업소보다는 공방을 입점시키는 게 본인에게도 이득”이라는 끈질긴 설득에 마음을 돌렸다.
이렇게 2016년 5월, 엔젤공방 1호점인 가죽 공방 ‘코이로’가 문을 열었다. 그 다음엔 생활용품 공방, 베이킹 공방, 젓가락 공방이 변종업소 자리를 차례차례 꿰찼다. 밤에야 빨간 불이 켜지던 거리 풍경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웃들의 수다, 빵 냄새, 커피 향, 꽃향기가 변종업소의 빈 자리를 채웠다. 굴러온 공방들이 골목 깊이 뿌리내린 방석집을 밀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주엔 아홉 번째 엔젤공방, 파이 공방이 들어선다. 수 많은 밤의 ‘단속’들도 하지 못한 성과였다. 10년 전 90개에 육박하고 이후에도 40여개를 유지하던 이 일대 변종업소는 엔젤공방의 활약에 힘입어 19개로 급감했다.
구도 엔젤공방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다각도 지원에 힘쓰고 있다. 초기 창업자들의 ‘자금난’ 해소를 위해 보증금과 인테리어 비용, 월세의 50%를 1년간 지원한다. 점포당 5,000만~5,500만원을 투자한다. 사업 이름도 ‘엔젤투자자’의 ‘엔젤’에서 따왔다. 창업을 위한 복잡한 행정 절차도 구 관계자에게 직접 조언을 받을 수 있다. 젓가락 공방 ‘시와저’의 유수혜(44) 대표는 “저 같은 창업 초보는 건물 계약부터 시작해서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구는 엔젤공방이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다양한 사회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고 보고 있다. 손영창 구 사회적경제팀장은 “원래 공실이 많은 동네였는데 공방 덕에 청년들이 운영하는 카페, 빵집들이 속속 들어서는 등 지역 상권이 활기를 띄고 있다”고 말했다. 동네 부동산이 들썩이자 5호점부터는 건물주와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한 상생 협약을 맺어 5년간 임대료 동결을 약속한 상태다.
엔젤공방은 공방 교육을 통해 지역 내 일자리 창출 전진 기지로의 역할도 하고 있다. 서울시와 강동구는 ‘상향적 협력적 일자리 창출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해 11월 엔젤공방에서 창업이나 취업을 위한 교육을 받을 인턴 38명을 선발했고, 올 4월엔 공방 직원으로 일할 기간제 근로자 8명을 뽑는다. 손 팀장은 “변종업소가 모두 사라질 때까지 엔젤공방 사업을 이어갈 것”이라며 “연말까지 엔젤공방을 15호점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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