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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이징, 박항서!” 1억 베트남, U-23 결승 진출로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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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이징, 박항서!” 1억 베트남, U-23 결승 진출로 ‘폭발’

입력
2018.01.23 22:15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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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신.. 이제 박항서 그를 형용할 단어가 없다"

23일 오후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준결승전에서 베트남이 카타르를 꺾고 결승에 진출하자 호찌민 시내 한 맥주집에서 응원을 하던 시민들이 일제히 일어나 환호하고 있다.
23일 오후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준결승전에서 베트남이 카타르를 꺾고 결승에 진출하자 호찌민 시내 한 맥주집에서 응원을 하던 시민들이 일제히 일어나 환호하고 있다.

“벳남, 꼬올렌!” “벳남 꼬올렌!” “벳남 꼬레!” (베트남 힘내라!)

23일 오후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23세 이하(U-23) 축구 대표팀이 중국 장쑤(江蘇)성 창저우(常州) 올림픽스포츠센터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준결승전에서 카타르를 꺾고 결승에 오르자 베트남이 폭발했다. 평균 연령 30세의 젊은 베트남. 동족상잔의 베트남전 종전(1975년) 이후 온 국민이 한데 모여 같은 소리를 내고 환호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날만은 달랐다. 한국인 박항서 감독이 끌어낸 축구팀의 기적이 1억 베트남인을 한 데 묶었다.

천신만고 승부차기로 기적 같은 결승 진출이 이뤄지자, 호찌민 시내 한 맥주집에 앉아 응원하던 시민들은 일제히 스프링처럼 튀어 올랐다. 알지도 못한 이들과 악수하고 부둥켜 앉은 채 눈물을 훔쳤다. 이내 ‘박항서, 박항서’를 연호하더니, ‘호찌민’을 합창하면서 한데 뭉쳤다. 아시안상업은행의 토 탕 과(39)씨는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며 맥주잔을 머리 위로 털었다.

23일 오후 베트남 U-23 대표팀이 카타르와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만들어내자 한 커플이 부둥켜 안은 채 기쁨을 나누고 있다..
23일 오후 베트남 U-23 대표팀이 카타르와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만들어내자 한 커플이 부둥켜 안은 채 기쁨을 나누고 있다..

여자 친구와 함께 맥주집을 찾은 현지 여행가이드는 “8강에 올랐을 땐 그는 이미 ‘영웅’이었고, 베트남을 4강에 올렸을 땐 ‘신’이었다”며 “이제 우리는 그를 형용할 수 있는 단어가 없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사상 첫 국제 축구대회 4강 신화에 이어 베트남이 우승 문턱에 다가서자, 박 감독의 인기는 국민적 영웅 수준까지 상승했다.

베트남 대표팀이 2대1로 뒤지다가 극적 동점골을 넣자, 고등학교 친구들과 응원에 나섰다는 콰(33)씨는 “내 가슴이 이렇게 떠는 것을 나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다”며 엄지를 치켜들더니, “어메이징 코치(놀라운 박항서!)”를 반복했다. 베트남의 각 방송과 신문 등 주요 매체도 ‘결승진출’ 신화를 일궈낸 박 감독의 용병술은 물론이고 사소한 버릇이나 평소 취미를 앞다퉈 소개했다. 카타르전을 생중계한 베트남의 한 인터넷 방송은 화면 우상단 4분의1을 박 감독이 팔짱을 끼고 선수들을 지휘하는 사진으로 채웠다.

23일 오후 베트남 U-23 축구대표팀이 AFC U-23 챔피언십 준결승전에서 카타르를 꺾고 결승에 진출하자 호찌민 시내 한 맥주집에서 응원을 하던 여성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23일 오후 베트남 U-23 축구대표팀이 AFC U-23 챔피언십 준결승전에서 카타르를 꺾고 결승에 진출하자 호찌민 시내 한 맥주집에서 응원을 하던 여성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결승진출의 환희는 이날 밤 늦도록 식지 않았다. 수도 하노이 시내의 베타극장은 이날 아예 모든 영화 상영을 중단하고 경기 중계에 나섰으며, 수많은 직장인들이 반차를 써서 삼삼오오 몰려 앉았다. 한국계 기업 손일민 법인장은 “베트남 직원들과 일찌감치 워크숍 장소를 함께 응원하기 좋은 곳으로 잡았다”며 “현지 직원들과 한번 더 뭉치게 하는 최고의 워크숍이었다”고 평가했다.

23일 오후 호찌민 시내로 몰려 나온 시민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승리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23일 오후 호찌민 시내로 몰려 나온 시민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승리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수도 하노이와 남부 호찌민 시민들은 생애 처음 맛보는 감동을 만끽했다. 전에 간간이 보이던 부부젤라가 부쩍 많이 등장했고, 베트남 국기는 물론 붉은 셔츠를 입은 이들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호찌민시내 도로 곳곳은 지난 20일 4강에 올랐을 때보다 더 막혔고, 더 시끄러웠고, 더 뜨거웠다.

사실 이날 베트남의 준결승전은 순탄치 않았다. 카타르와의 대결은 막판까지 팽팽한 긴장감이 이어졌고, 경기 막판에는 패색까지 짙었다. 1대1 동점에서 후반 42분 카타르의 골을 허용했기 때문. 그러나 1분 후 과감한 중거리 슛으로 경기를 원점으로 돌린 뒤 승부차기를 벌였다. 첫 키커 실축으로 뒤졌을 때는 ‘여기까지인가’라는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승부차기에서 4-3으로 승리를 확정 짓자 온 나라가 들썩였다.

베트남 페이스북에서 급속히 확산하고 있는 박항서 감독 캐리커처. '오빠'로 불린다.
베트남 페이스북에서 급속히 확산하고 있는 박항서 감독 캐리커처. '오빠'로 불린다.

그러나 김봉길 감독이 이끄는 한국대표팀은 이날 중국 쿤산스포츠센터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의 4강전에서 연장승부까지 가는 접전 끝에 1대4로 패했다. 후반 28분 장윤호의 퇴장으로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해 한국지도자가 지휘봉을 잡는 두 팀이 결승전을 펼치는 아름다운 장면은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이날 승리로 박 감독은 베트남 축구의 역사도 새로 썼다. 지난해 10월 베트남 대표팀의 사령탑으로 부임한 박 감독은 이번 대회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우리나라를 상대로 만만치 않은 경기력을 보여준 데 이어 강호 호주를 꺾고 처음으로 8강에 진출했다. 이어 이라크에 승부차기 끝에 짜릿한 승리를 거두고 동남아 국가 최초로 4강에 진출했다.

호찌민=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준결승전이 열리던 23일 오후 호찌민 시민들이 대형 스크린 앞에서가던 길음 멈추고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준결승전이 열리던 23일 오후 호찌민 시민들이 대형 스크린 앞에서가던 길음 멈추고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준결승전이 열리던 23일 오후 호찌민 시민들이 대형 스크린 앞에가던 길음 멈추고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준결승전이 열리던 23일 오후 호찌민 시민들이 대형 스크린 앞에가던 길음 멈추고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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