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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궐련형 전자담배마저 끊고 응원과 격려 입에 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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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궐련형 전자담배마저 끊고 응원과 격려 입에 물다

입력
2018.01.2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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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차 금단현상 없자 “별거 없네”

48시간 만에 “힘들어” 전자담배로

열흘 후부터 다시 완전금연으로

15일차부터 두통ㆍ매사 무기력

보건소 찾아 보조제 등 도움 받아

하지만 불안감 여전한 4주차

그림 1 지난 17일 찾은 서울 서대문구 보건소 금연상담실에 담배 연기 속 발암물질을 알려주는 모형 담배가 놓여있다. 박주희 기자
그림 1 지난 17일 찾은 서울 서대문구 보건소 금연상담실에 담배 연기 속 발암물질을 알려주는 모형 담배가 놓여있다. 박주희 기자

“언제까지 담배 피울 거야?”

지난해 마지막 날, 아내가 “얘기 좀 하자”며 거실 소파에 기자를 불러 앉혔다. 낮게 깔린 아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등뒤에 식은 땀이 흘렀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대충 감이 왔다. 30여분간 이어진 대화의 중심내용은 예상대로 “새해를 맞아 담배를 끊어보는 것은 어떠냐”는 것이었다. 4년여의 연애기간과 1년여의 신혼생활 동안 계속 이어진 요구였지만, 이번 아내의 요구는 유독 단호했다. 이유가 있었다. 임신 중인 아내의 출산예정일이 이달 중순으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아내는 30여분간 금연의 필요성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구구절절 아내의 말이 옳았다. 대화를 끝내고 나니 남편으로서, 그리고 ‘예비 아빠’로서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웠다. 대화를 마친 아내가 서재 책상 위에 놓인 담뱃갑을 집어 들었다. 담배 14개비가 시원한 물내림 소리와 함께 욕실 변기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머릿속에는 딱 한 가지 생각만 맴돌았다. ‘오전에 새로 산 건데.......’ 어찌됐든 그 순간부터 기자의 금연 도전도 (자의 반 타의 반) 1일 차를 맞았다.

새해 아침이 밝았다. 십수 년간 눈을 뜨자마자 맛봤던 담배 한 모금이 사라지자 금연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피부로 와 닿았다. 의외로 생각보다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새 사람이 됐다’는 자부심으로 상쾌하게 샤워를 한 후 새해 첫날 출근길에 올랐다. 일과를 마치고 양가에 새해 인사를 다녀오자 금세 하루가 지났다. 별다른 금단현상도 없었다. 단 하루 담배를 안 피웠을 뿐인데 머리가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금연 별거 없네’라며 자신감에 도취됐다.

이틀 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마자 어쭙잖은 자만심이 사라졌다. ‘작심삼일’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3일은 고사하고 만 48시간 만에 아침 담배를 태우고 싶어 참을 수가 없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포 하나하나가 니코틴을 원하는 느낌이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돌파구를 찾았다. 예전에 혹시 몰라 사두었던 ‘궐련형 전자담배’가 불현듯 머릿속을 스쳤다.

아내와 깊은 대화를 나눴다. “십수 년간 하루 한 갑씩 담배를 피웠는데, 한 번에 끊으면 오히려 몸이 놀랄 수도 있다”는 게 대화의 핵심내용이었다. 현재를 “완전한 금연으로 가는 과도기”로 설정하고, “보름간 궐련형 전자담배를 매일 두 개비씩만 피우겠다”는 협상도 시도했다. 아내가 깊은 한숨을 내쉰 뒤 마지못해 이에 동의하자마자 총알같이 몸을 일으켜 현관문을 나섰다. 전자담배 한 모금을 빨자 마음의 안정이 찾아왔다. 그러나 잠시 후 의지박약을 자책하는 ‘자기혐오’에 빠졌다.

그림 2 새해 금연 결심을 한 후 ‘금연 과도기’에 입에 물었던 궐련형 전자담배. 일산화탄소 배출은 적지만 니코틴 등 유해물질은 여전히 몸 속에 축적된다. 박주희 기자
그림 2 새해 금연 결심을 한 후 ‘금연 과도기’에 입에 물었던 궐련형 전자담배. 일산화탄소 배출은 적지만 니코틴 등 유해물질은 여전히 몸 속에 축적된다. 박주희 기자

자기혐오는 현실을 이기지 못했다. 그로부터 약 열흘간 담배가 생각날 때마다 궐련형 전자담배를 꺼내 피웠다. 그나마 최소한의 양심은 지키기 위해 하루에 2, 3개비 이상은 피우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궐련형 전자담배가 ‘금연 과도기’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됐다. 십수 년간 수차례 금연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이유는 니코틴 결핍과 연초습관, 두 가지로 정리된다. 궐련형 전자담배는 이 두 가지 실패원인을 어느 정도 해결해 줬다. 궐련에 포함된 니코틴이 금단현상을 막아 줬고, ‘무언가를 입에 물고 빨고 싶다’는 습관도 충족시켜 줬다. 또 담뱃잎을 불로 태우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담배연기가 발생하지 않았고 특유의 냄새도 사라졌다.

하지만 궐련형 전자담배 역시 유해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스위스 산업보건연구소에 따르면 궐련형 전자담배에서도 1군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 벤조피렌이 검출됐다. 아크롤레인, 크로톤알데히드 등 유해물질도 나왔다. 또 상당량의 일산화탄소가 검출됐다는 연구보고도 잇따라 나오고 있는 중이다. 결국 열흘 후부터 궐련형 전자담배도 피우지 않기로 결심했다. 열흘간 서서히 니코틴 흡입량을 줄여왔기 때문에 극단적인 금단현상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란 자신도 생겼다. 다시 ‘완전한 금연’에 들어갔다.

정확히 15일 차부터 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매사에 무기력했다. 어딘가에 눕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가벼운 두통 증세도 동반됐다. 아침마다 침대 위를 뒹굴거리며 ‘20대와 30대 초반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친구를 떠나 보낸 것 같다’는 한심한 생각도 자주 했다.

결국 금연 17일 차에 서울 서대문구 보건소를 찾았다. 금연상담원들의 환대를 받으며 서류를 꼼꼼하게 작성했다. ‘하루 흡연량: 20개비’ ‘금연시도 횟수: 8회’ ‘금연 이유: 멋진 아빠가 되기 위해서’ 등 현 상태와 스스로의 의지를 점검했다.

그림 3 서울 서대문구 보건소에서 사용한 일산화탄소 측정기. 박주희 기자
그림 3 서울 서대문구 보건소에서 사용한 일산화탄소 측정기. 박주희 기자

작성이 끝난 후 상담원이 일산화탄소 측정기를 건넸다. 한창 담배를 많이 피웠던 5년 전 일산화탄소 수치가 14PPM이 나온 적이 있었다. 헤비스모커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의외로 4PPM이라는 낮은 수치가 나왔다. 사실상 비흡연자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열흘간 극히 적은 양의 궐련형 전자담배만 피운 덕분인 듯했다. 약간의 노력만으로도 일산화탄소 수치가 현저히 떨어진 것을 눈으로 목격하자 금연의지가 더욱 강해졌다.

보건소에서 니코틴 패치, 박하향 사탕, 지압기 등 금연보조제를 챙겨 줬다. 다음날부터 매일 아침 니코틴패치를 붙이고 잠자리에 들기 직전 패치를 떼는 것이 일상이 됐다. 하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두통은 사라졌지만, 무기력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담배를 직접 입으로 피우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들었다. 보건소 상담원이 알려 준 대로 사탕을 먹거나 정 힘들면 볼펜을 담배처럼 입에 가져다 댔다. ‘별짓을 다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며 자괴감이 물밀 듯 밀려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도 불쑥불쑥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보건소에서 챙겨 준 지압기를 만지며 마음을 다잡았다.

기자의 금연도전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금연시도 23일 차, ‘완전 금연’ 9일 차에 접어들었다. 아내는 사탕과 초콜릿 등 간식을 챙겨 주고, 지인들도 박수를 보내고 있다. 보건소는 금연결심을 축하한다는 내용의 응원문자를 보냈고, 금연이 힘들면 2주 후 다시 한 번 보건소에 방문하라고 제안했다. 기자는 현재 궐련형 전자담배나 니코틴패치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응원과 격려로 금연 4주 차를 버티고 있다.

그림 4 서울 서대문구 보건소에서 챙겨준 금연보조제. 박주희 기자
그림 4 서울 서대문구 보건소에서 챙겨준 금연보조제. 박주희 기자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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