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마지막으로 출전한 뒤 스케이트화를 벗겠다는 빅토르 안(33ㆍ한국명 안현수)의 꿈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스포츠 익스프레스 등 러시아 언론들은 22일(한국시간) 밤 “빅토르 안이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 가능 명단에서 제외됐다”고 긴급히 소식을 전했다. 빅토르 안은 이에 대해 함구하고 있지만 러시아 당국과 빅토르 안의 동료들은 “정치적인 의혹이 있는 것 아니냐”며 발끈하고 있다.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빅토르 안과 그의 러시아 동료 몇 명은 ‘맥라렌 보고서’에 포함됐다. 이 보고서는 세계반도핑기구(WADA)의 독립위원회 수장인 캐나다 법학 교수 리처드 맥라렌이 러시아의 조직적인 금지약물 복용과 은폐 사례를 밝히기 위해 작성했다. 다수 언론들은 보고서에 빅토르 안의 이름이 올랐다고 보도하고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이름이 아니라 소변샘플 번호만 나와 있다. 이 샘플의 당사자가 누구인지는 WADA만 안다.
IOC는 이 보고서가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해 지난 해 12월 러시아의 평창올림픽 출전을 불허했고 도핑과 무관한 선수들만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OARㆍOlympic Athlete from Russia)’라는 개인 자격으로 참가할 수 있도록 했다.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IOC는 이 과정에서 111명을 제외한 389명에 대해서만 평창행을 허락했다. 389명이라는 규모만 발표했을 뿐 구체적인 선수 이름은 거론하지 않았는데 러시아 언론들이 취재를 통해 여기에 빅토르 안이 들어있다는 걸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IOC는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으며 정확한 명단은 오는 27일께 발표할 예정이다.
빅토르 안과 함께 출전명단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 쇼트트랙 선수 블라디미르 그리고리예프는 러시아 언론 인터뷰에서 “쇼트트랙은 가장 깨끗한 스포츠다. 아무도 금지된 약물의 도움을 받아 기록을 향상하려고 한 적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비챠(빅토르 안의 애칭)는 그의 힘만으로 승리를 거뒀다. 보도에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도핑 의혹이 사실로 밝혀져도 해당 선수는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할 수 있다. 이미 도핑에 연루됐던 러시아 선수들 대부분은 CAS에 제소해 최종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러나 빅토르 안은 시간이 촉박해 CAS에 제소를 해도 평창올림픽 개막 전 결과가 나오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번 보도를 계기로 빅토르 안의 파란만장한 스토리도 새삼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2011년 러시아로 귀화하기 전 그는 한국 국적의 안현수로 정상과 바닥을 모두 경험했다. 2002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 처음 출전했을 때 노메달에 그쳤지만 4년 뒤 2006 토리노 대회에서 3관왕(1,000mㆍ1,500mㆍ5,000m 계주)을 차지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2008년 무릎 부상 이후 내리막을 걸어 2010 밴쿠버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이 무렵 한국 쇼트트랙을 병들게 했던 ‘짬짜미(같은 파벌끼리 밀어주는 일)’ 의혹이 불거지고 소속팀 성남시청까지 해체하며 시련을 겪은 빅토르 안은 자신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러시아로 귀화했다. 러시아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그는 2014 소치올림픽에서 3관왕(500mㆍ1,000mㆍ5,000m 계주)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김주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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