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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제2의 김희중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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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제2의 김희중을 기다린다

입력
2018.01.21 20: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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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과 관련된 검찰의 수사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는 이명박(왼쪽) 전 대통령과 13일 서울중앙지검을 나서는 김희중 전 대통령 제1부속실장. 서재훈기자, 연합뉴스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과 관련된 검찰의 수사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는 이명박(왼쪽) 전 대통령과 13일 서울중앙지검을 나서는 김희중 전 대통령 제1부속실장. 서재훈기자, 연합뉴스

이명박(MB) 전 대통령 정부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특활비) 수수 의혹과 관련해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마침내 언론에도 입을 열었다. 15년여 동안 이 전 대통령을 지켰던 최측근 인사인 김 전 실장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검찰 수사와 관련해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분은 그분(MB)뿐이다”라고 말하며 상당 부분 진실을 털어놨음을 내비쳤다. 1997년 초선 의원 MB의 비서관으로 채용되면서 인연을 시작한 그는 MB의 서울시장 시절 의전비서관을 거쳐 청와대에서 제1부속실장을 지내면서 명실상부한 정치인 이명박의 ‘그림자’로 살았다. 그런 그가 특활비 의혹과 관련해 검찰에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했다고 가늠했는지 이 전 대통령은 현 정권의 역린(逆鱗)까지 건드리며 지난주 대국민 성명으로 대응하기에 이르렀다.

2005년 4월. 당시 김희중 서울시 의전비서관을 1주일가량 가까이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서울시청 출입기자 여럿과 함께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뛰어들 것이 자명했던 당시 이 시장의 동유럽 출장 일정을 따라가면서다. 대선이슈는 물론 행정수도를 놓고 참여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뉴스를 쏟아내던 이 전 시장이 모든 언론의 주목을 받던 때다. 이런 그의 곁에서 출장기간 가장 많이 눈에 띈 인사가 김 전 실장이였다. 공석은 물론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도 그는 흐트러짐없이 늘 이 시장을 비호하면서도 필요없이 자세를 낮추지 않는 올바른 사람이었다. 주변에서 나쁘게 말하는 이가 없었고, 그가 내놓는 답들은 항상 정치적 주군 MB를 이롭게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런 김 전 실장이 2012년 저축은행으로부터 1억8,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1년 3개월을 선고받은 후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더니 이 전 대통령으로부터 내침을 당했고, 어느 순간 특활비 수사의 자물쇠를 열 인물로 뉴스에 등장한 지난 며칠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부정한 일을 저질렀지만, 15년의 인연이 잘린 채 상처(喪妻)의 슬픔마저 위로받지 못했던 사람. 그가 검찰을 향해 펼쳤을 진술은 무디지 않았으리라. 측근의 역습. 아마도 김 전 실장의 진술 과정을 지켜보며 MB진영에서 떠올렸을 법한 시나리오가 아닐까. 하지만 이는 어쩌면 또 다른 반격의 서막일 수 있다는 점에서 MB 주변인들의 속은 답답했을 것이다.

2005년 봄 이명박 당시 시장의 동유럽 출장길에는 김 전 실장과 함께 또 다른 측근들이 동행했다. 한나라당 대변인을 지내다 변호사로 돌아온 은진수씨, 최영 당시 서울시 산업국장, 그리고 고 김병일 서울시 대변인 등이다. 바야흐로 ‘정치인 이명박’이 절대권력의 마지막 능선을 눈앞에 둔 시점에 그를 지근에서 수행한 이들이다.

허나 수년 후 그들은 차례차례 김 전 실장이 걸었던 것과 마찬가지의 수난의 길을 마주해야 했다. 은씨는 MB 집권을 전후해 한나라당 BBK팀 팀장과 이명박 대통령직인수위 자문위원을 거쳐 감사원 감사위원으로 평탄한 길을 걸었지만, 저축은행 비리로 복역하면서 2012년 가석방 이후 그의 경력은 더 이상 대중의 눈에 띄지 않게 됐다. 이른바 ‘S라인’의 핵심으로 꼽혔던 최씨는 시 경영기획실장을 지내고 MB 정부시절 SH공사 사장과 강원랜드 사장을 차지하는 관복을 누렸다. 그러나 그도 2011년 이른바 함바비리로 구속되면서 쇠락했다. 뉴타운 사업을 본궤도에 올리고 대변인을 맡아 MB곁을 지켰던 김병일씨는 안타깝게도 수년 후 홍콩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한 때 MB의 최측근으로 조명받았으나 각자의 사연 아래 거꾸러지며 무대를 내려선 인사들을 13년전 기억에 기대 소환한 이유는 이제 김 전 실장에 이어 이들의 입을 주목해야 할 것 같아서다. MB에 대한 서운함이 이들을 움직일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정치인에게 요구하는 국민의 눈높이가 달라졌음을 인정한다면, 이제 지난날 MB의 사람들이 말문을 열 때다. 국민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줄 제2의 김희중을 기다리고 있다.

양홍주 기획취재부장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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