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공중화장실에 기저귀교환대 의무 설치하라 했더니…
“사람들이 이렇게 지나다니는데 어느 부모가 여기서 자기 자식 기저귀를 갈겠어요?”
돌이 갓 지난 아들을 키우는 직장인 이모(27)씨는 최근 서울지하철 2호선 대림역 남자화장실 입구에 설치된 기저귀 교환대를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남자화장실에서도 아기 기저귀를 갈 수 있겠구나’라는 반가움도 잠시, 교환대가 화장실 내부가 아닌 외부에 버젓이 설치돼 있었던 것. 화장실을 드나드는 시민은 물론 행인들도 기저귀 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구조였다. 당사자인 아기의 인권을 따지는 건 그렇다 쳐도 기저귀를 가는 본인과 그걸 지켜보는 시민 모두 민망할 만한 상황이었다. 이씨는 “기저귀 교환대가 있는 남자 화장실을 찾기 어렵지만 이렇게 노출된 교환대를 이용하느니 화장실 변기 칸을 이용하는 게 더 낫겠다”고 혀를 찼다.
남성의 육아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2010년 정부가 고속도로 휴게소ㆍ지하철ㆍ공항 여자화장실뿐 아니라 남자화장실에도 기저귀 교환대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했지만 이 변화를 체감하는 육아 대디(Daddy)는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개정된 공중화장실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지하철역의 경우 남녀화장실에 각각 1개 이상의 영유아용 기저귀 교환대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지만, 설치율이 미미할 뿐 아니라 설치했더라도 육아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화장실 외부에 설치한 경우가 많다.
예컨대 사당역 남자화장실에는 교환대가 아예 없었고 남자화장실과 붙어 있는 여자화장실 입구에 교환대가 설치돼 있지만 행인들에게 노출된 구조라 이를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현장에서 만난 주부 박정현(55)씨는 “밖에서 훤히 다 보이는 교환대에서 기저귀를 갈 부모가 있을 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윤진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은 “(화장실 밖 기저귀 교환대는) 부모의 민망함이나 미관상 문제를 떠나 위생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심각한 유아 인권침해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당국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한다. 지하철 역사 내 공중화장실을 관리하는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화장실 내부에 교환대를 설치하는 게 맞지만 대림역을 비롯한 일부 역사는 내부 공간이 부족해 부득이하게 밖에 설치하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법 개정에 따라 기존 화장실에 교환대를 추가 설치하려다 보니 공간이 부족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유명무실하게 설치된 교환대를 부모들이 외면하면서 교환대 부족을 호소하는 목소리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11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아이를 키우는 부모 497명 중 391명(78.7%)이 “기저귀 교환대가 설치되지 않아 실제로 불편을 겪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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