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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언 박항서” … 베트남, 이라크 꺾고 사상 첫 ‘4강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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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언 박항서” … 베트남, 이라크 꺾고 사상 첫 ‘4강 진출’

입력
2018.01.21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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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대표팀이 20일 오후 중국 장쑤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8강전에서 이라크를 승부차기 끝에 승리, 4강에 오르자 자축하기 위해 나온 호찌민 시민들이 시청광장(응우옌 후에 거리)에서 함성을 지르고 있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국가축구대표팀이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4강에 처음으로 진출했다. 지난 17일 같은 대회 8강에 첫 진입한 지 사흘 만에 그 기록을 갈아치우자 인구 1억의 베트남은 일순 흥분의 도가니로 떨어졌다. 지난 1975년 베트남 통일 후 그들을 이토록 열광케 한 일은 없었다.

베트남 사상 첫 4강

베트남 축구 대표팀은 20일 오후 8시 30분(한국시각) 중국 짱쑤스다디움에서 열린 이라크와의 8강전에서 승부차기 접전 끝에 5-3으로 승리했다. 연장전을 포함, 120분간 3대 3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5대 3으로 이겼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성적이다. 지난 14일 베트남이 호주를 1대 0으로 꺾으면서 8강행 가능성이 점쳐지긴 했지만, 4강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어 17일 열린 시리아와의 경기를 0대 0으로 무승부로 이끌며 8강 진출을 확정 지은 데 이어, 이날 조 1위의 이라크까지 꺾으면서 파란을 연출했다. 이로써 베트남은 동남아 국가 중 아시아 대회 최초의 4강이 됐다.

흥분의 도가니 베트남. 베트남이 아시아 4강에 오른 20일 저녁 베트남 국기를 든 한 커플이 호찌민 시내를 달리고 있다.

베트남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경기 종료 후인 이날 오후 10시(현지시간)부터 호찌민 시내 길거리에는 오토바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 맛보는 승리를 자축하기 위한 행렬이었다. 친구와 직장동료, 연인, 가족 단위로 오토바이를 타고 나왔다. 정처 없이 앞 오토바이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움직였다. 아들(12)과 ‘승리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나왔다는 한 40대 여성은 “역사적인 순간을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인파를 배경으로 ‘셀카’를 연신 찍었다. 직장 동료들과 사무실 TV로 경기를 지켜본 뒤 거리로 나왔다는 회사원 응우옌 꽝 쩡(27)씨는 “스포츠가 이렇게 우리를 기쁘게 한 적이 없다. 박 감독에게 감사 드린다. 한국도 4강에 동시에 진출해 더욱 기쁘다”고 말했다. 한국 대표팀은 같은 날 말레이시아를 꺾고 4강을 확정했다.

한 시민이 자신의 오토바이에 올라 서 베트남 국기를 흔들고 있다.

흥분의 도가니

베트남은 밤새 들썩거렸다. 서울의 광화문광장을 벤치 마킹해 만든 응우옌 후에 거리는 물론 여행자의 거리로 불리는 데탐거리 및 부이비엔거리 등 시내 곳곳의 시민들은 늦도록 집에 돌아갈 줄을 몰랐다. 도로는 몰려든 인파로 몸살을 앓았다. 교통 체증을 풀기 위해 공안(경찰)들이 출동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특히, 일부 운전자들은 브레이크를 잡은 채 오른손으로 액셀을 감아 일으킨 굉음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기도 했는데, 이때 나온 매연으로 목이 따가울 정도로 일대 공기는 탁했다. 미간을 찌푸리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8강전에서 베트남이 이라크를 승부차기 끝에 승리, 4강에 오른 20일 저녁 한 가족이 시내서 '승리의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

이날 일은 ‘사변’으로 분류된다. 박충건 베트남 사격 국가대표팀 감독은 “베트남 정부는 과거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스포츠를 통해 국민들에게 자긍심을 심고, 경제 성장의 에너지로, 또 호성적을 통해 국민 통합을 도모하려 했다”며 “역대급 성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지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사격(10m)에서 베트남에 첫 올림픽 금메달을 안겼다.

20일 밤 하노이 시내에서 오토바이 무리가 환호성을 지르며 거리를 누비고 있다. 박충건 베트남 사격 국가대표팀 감독 제공.

베트남의 히딩크, ‘박딩크’

박항서 감독은 작년 10월 베트남 축구협회(VFF)와 2년 기간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회의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한국인 감독 선임은 축구보다 베트남의 관광이나 경제에 더 큰 이익이 될 것 같다”, “(전임) 후 탕 감독을 다시 데려오라”, “온 국민이 코치인 나라에 온 걸 환영한다” 등의 반응이 많았다. 베트남의 열성적인 팬들 때문에 베트남은 축구 감독들이 자주 바뀌기로 유명하다. 특히 외국인 감독들에게는 ‘무덤’으로 불린다. 1991년 이후 박 감독이 지휘봉을 잡기까지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일본, 독일, 브라질 등에서 26명(재선임 포함)이 지났다. 1년에 1명 꼴이다.

여태껏 경험하지 못했던 '아시아 축구 4강.' 호찌민 시민들이 늦게까지 베트남의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하지만 박 감독이 이끄는 팀이 지난 17일 최초로 아시아 8강에 오르면서 보이기 시작한 ‘국민 영웅’ 조짐은, 이번 경기로 확실히 자리매김 하는 분위기다. ‘베트남의 히딩크’, ‘박딩크’로 불릴 정도다. 현지 매체 ‘단 비엣’은 “박 감독은 베트남의 히딩크다. 이번 대표팀의 활약은 위대했다”고 평했고, 일부 매체는 취재진들이 박 감독에게 박수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응우옌 쑤언 푹 총리는 8강에 오른 17일에 이어 이날에도 대표팀에 축전을 따로 보내 격려했다. 축구협회와 정부는 선수들에게 보너스도 약속해놓고 있다.

박항서 감독은 공을 선수들에게 돌렸다. 베트남 축구협회 관계자는 “박 감독은 선수들이 강인한 정신력으로 최선을 다한 덕분에 나온 결과라고 했다”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줄 것을 당부했다”고 전했다. 베트남은 오는 23일 카타르를 상대로 결승 진출을 노린다. 카타르와 베트남의 피파랭킹은 각각 70위, 130위 수준이다.

호찌민=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그가 바라던 모습.’ 20일 오후 호찌민시 인민위원회(시청) 앞 응우옌 후에 거리가 베트남 축구 대표팀의 승리를 축하하는 시민들 행렬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이들 뒤로 서 있는 동상은 베트남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평생을 쏟은 호찌민 주석. 화장 후 재를 베트남의 북ㆍ중ㆍ남부에 한줌씩 뿌려 줄 것을 유언으로 남겼지만 하노이 바딘 광장 영묘에 방부 처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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