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 목숨을 앗아간 종로 여관 방화범 유모(52)씨가 범행을 저지른 이유가 여관 주인에게 성매매 문의를 했다 거절당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불을 지르기 1시간 전, 여관 주인과 다퉈 경찰이 출동했지만 훈방 조치한 사실도 드러났다. 투숙객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 유씨가 출입구에 인화물질을 뿌린 뒤 불을 질렀던 탓에 피해자들이 제대로 된 대피를 하지 못하면서 사상자 수가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서울 혜화경찰서는 20일 오전 3시쯤 종로구 종로5가 서울장여관에 불을 내고 10명을 사상하게 한 혐의(현존건조물방화)로 유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유씨는 이날 오전 2시6분쯤 “여관 주인이 들여보내주지 않는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여관 주인 김모(71)씨도 유씨를 따라 경찰에 두 차례 신고했다.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지만 경찰은 유씨에게 훈방 조치했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유씨가 술은 취했지만 말은 통했고 별다른 행패를 부리지 않고 얌전히 여관 앞에 앉아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풀려난 유씨는 여관에서 약 1.7㎞ 떨어진 주유소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유씨가 해당 주유소로 곧바로 이동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인근에 24시간 주유소가 그곳뿐이라는 게 경찰 설명이다. 유씨는 주유소에서 휘발유 10ℓ를 구입했다.
유씨는 오전 3시8분쯤 휘발유를 들고 여관으로 다시 돌아왔다. 유씨는 주저하지 않고 여관 1층 현관문을 열고 복도에 휘발유를 뿌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건물 밖으로 나온 것으로 조사됐다.
불이 나자 여관 주인은 건물 밖으로 뛰쳐나와 “건물이 타고 있다”고 소방당국과 경찰에 신고했다. 유씨 또한 경찰에 “내가 여관에 불을 질렀다. 근처 약국 앞에 있겠다. 여관 주인이 나를 안 들여보내줘서…”라고 신고했다. 여관 주인은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인근 다른 여관 주인은 본인 건물에 있던 소화기 10여개를 가지고 나와 불을 끄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해당 여관 주인은 “’꽝’ 소리와 함께 불이 치솟았다”며 “그러면서 중간중간에 뭔가 터지는 소리가 같이 났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여관에 묵고 있던 장기투숙객이 가지고 있던 인화물질이 터지는 소리가 아니겠냐는 게 목격자들 얘기다.
소방당국은 신고 8분만에 소방차 50여대와 소방관 180명 가량이 도착해 진화 작업 시작 1시간이 돼서야 불을 잡을 수 있었다. 여관이 워낙 좁은 골목 안에 위치해 대로변에서 물을 뿌리거나, 여관에서 약 50m 떨어진 곳에서 호스를 끌어와 진화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스프링쿨러도 없었다. 여관 크기가 너무 작아 스프링쿨러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었다.
불이 잡히자 구조 작업이 시작됐다. 안타깝게도 여관에서 투숙하던 10명 중 1명 최모(53)씨를 제외하고 모두 건물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상태였다. 현재까지 최씨 포함 박모(52)씨, 진모(53)씨, 유모(26)씨 4명은 신원이 확인됐고 나머지 한 명은 화상이 심해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 이중 두 명은 이송 당시 심폐소생술을 해야 할 정도로 부상이 심했지만 현재는 의식이 돌아왔다.
나머지 5명은 사망했다. 현재까지 5명 중 2명(이모(62)씨, 김모(52)씨)의 신원은 확인됐지만, 나머지 여성 3명 신원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여성 3명은 여관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105호에 함께 머물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두 명이 50대와 20대 여성으로 파악돼 ‘모녀’ 또는 ‘일가족’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 대부분이 건물 안에서 발견됐고 화상 정도가 심하거나 심지어 소지품도 심하게 훼손돼 신원 확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최대한 빨리 신원을 확인해 가족에 알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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