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위기 조성하다 돌연 참가 ‘반감’
한반도기 사용에 찬성 절반도 안돼
단일팀 구성도 ‘선수들 희생’ 시각
“한미훈련 전에 대화 국면 조성
화해 위한 양보 불가피” 지적도
근 10년 보수정권 집권기 동안 얼어붙었던 남북관계가 녹고 있다.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하기로 전격 결정하면서다. 하지만 수상쩍은 온기(溫氣)다. 핵 위협이 남아 있는 한시적 평화인 탓이다. 분단 65년을 거치며 흐려진 동질감은 보다 근원이다.
한반도기 동시 입장,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등 머리로는 필요성을 이해하지만, 정서적으로는 왜 폐 끼치는 불청객의 대접이 극진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해빙의 역설이다.
평창 올림픽 개막식 때 한반도기를 들고 함께 입장하자는 남북의 합의는 국민 절반의 동의도 얻지 못했다. 17일 리얼미터가 전국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 ‘남북선수단이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응답은 고작 40.5%였다. ‘남한 선수단은 태극기를, 북한 선수단은 인공기를 각각 들고 입장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답한 비율이 49.4%로 더 높았다.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합의를 향한 시민의 시선은 더 싸늘하다. 20대 직장인 정희진씨는 18일 “우리 아이스하키팀 선수들이 항의하고 눈물 흘리는 장면을 뉴스에서 봤다”며 “몇 년간의 선수들 노력이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희생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취업 준비생 강석현(26)씨도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라는 목표야 좋은 거지만 목표를 위한 수단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대체로 취업난 속에서 공정성 이슈에 민감한 20ㆍ30대가 더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이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공정한 경쟁을 거쳐 만들어진 팀에 정치적 이유로 낙하산 선수를 꽂는 일은 정당하지 않다는 게 젊은 층의 기본 인식”이라며 “북한이 동포라기보다 시대착오적 독재국가라는 생각이 더 강해진 청년에게 더 이상 특권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해빙을 둘러싼 진보ㆍ보수 간 온도차도 이전보다 확연해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 단일팀은 역사의 명장면이 될 것”이라고 했지만, “명장면 연출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전체주의적 발상”(유승민 바른정당 대표)이라는 반론이 곳곳에서 나온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단일팀 구성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지적에 공감한다”면서도 평화 분위기 조성이 장기적으로는 이득이라며 이해를 구했다.
‘평화 올림픽’으로 치르겠다는 정부의 구상이 과하면 자칫 올림픽 자체가 묻힐 수 있다거나 북측 마식령 스키장 공동 훈련 추진 논란처럼 자칫 북한의 평화 공세에 이용만 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황지환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작년까지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다가 올림픽이 임박하자 돌연 대화 모드로 전환한 게 북한의 기만 전략 차원이고, 거기에 우리가 말려들 수 있다는 걱정이 국민들 사이에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보수ㆍ진보 모두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한반도기는 9차례의 남북 공동 입장에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진보 정권이 한반도기를 사용한다고 감정부터 내세울 문제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에서 전쟁 불가라는 큰 원칙을 세운 만큼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나오도록 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평창 올림픽이 유용한 교두보가 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노태우 정부 때인 1991년 일본 지바 탁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반도기가 처음 사용됐을 때와 같은 열렬한 감흥이 왜 없는지 정부도 보다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반도기나 단일팀 구성이 전쟁은 절대로 안 된다는 장기적 대의와 실리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취지의 설득 작업이 더 있었어야 했다” 며 “지지율을 믿는 건지 너무 일방통행 식으로 밀어붙이는 면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자신을 문 대통령 지지자라고 소개한 요리사 김대중(26)씨 역시 “남북 화합이란 취지는 좋지만 너무 합의에 얽매이는 성과주의에 빠진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진영 논리를 뛰어넘는 큰 틀의 전략적 사고를 해달라’. 핵무기 아래 놓인 한반도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들이 정부와 정치권에 보내는 공통된 요구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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