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팀 주장이었던 이태홍 “식사할 때 서먹함 없애자 친해져”
北코치였다 귀순한 문기남 “南선수들 선물에 마음 녹기도”
당시 트레이너였던 최만희 “코치가 가교 역할해 마음 열어야”
우여곡절 끝에 꾸려진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의 가장 큰 ‘핸디캡’은 팀워크다. 대회 개막을 20여 일 앞두고 갑자기 구성된 단일팀이 조직력과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긴 쉽지 않다.
1991년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남북 축구 단일팀을 구성해 8강 진출의 쾌거를 썼던 주역들은 “우리(남한)가 먼저 북한 선수를 배려하고 다독여 ‘원 팀’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축구 단일팀 주장이었던 이태홍(47) 전 경주시민축구단 감독은 “북한 선수들이 식사 시간에 우리를 불편해하는 것 같아 남한 선수들이 빨리 먼저 먹고 자리를 비켜줬다. 그랬더니 한 사람이 3인분씩 양껏 먹더라. 일단 그렇게 서먹함을 없앤 뒤 점차 같은 테이블에서 먹으며 친해졌다”고 기억했다.
당시 축구 단일팀은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호흡을 맞췄고 대회 장소인 포르투갈로 일찌감치 날아가 적응 훈련을 하는 등 50일 가까이 합숙을 했다. 남북 선수들이 쉽게 친해진 건 포르투갈에서였다. 이 감독은 “유럽을 가니 남북 모두 감시원 숫자가 크게 줄어 비교적 자유롭게 왕래했다”고 말했다.
단일팀 때 북한 코칭스태프였다가 2004년 귀순한 문기남(70) 전 울산대 감독도 “북한 선수들은 ‘이렇게 말하라’ ‘언제는 웃어라’며 토씨 하나까지 교육 받는다. 또 늘 밀착 감시 당해 기계처럼 딱딱할 수밖에 없다. 포르투갈 가서야 선수들이 여유를 찾더라”고 회상했다.
때로는 은밀히 건넨 ‘선물’이 북한 선수들 마음을 녹이기도 했다. 북한 선수들이 목욕탕을 가면 북한 당국에서는 선수들 가방을 탈탈 털어 혹시 모를 남한 서적 등을 확인했다. 문 감독은 “당시 실세였던 장성택이 ‘고생하는 선수들 격려는 못할망정 뭐 하는 짓이냐’고 버럭 화를 낸 뒤부터 가방을 안 뒤졌다. 그 때부터 남한 선수들이 귀한 카세트 같은 걸 선물하더라. 우리(코칭스태프)는 알면서도 모른 척 했다”고 미소 지었다.
27년 전 축구와 달리 여자 아이스하키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단일팀의 첫 경기는 2월 10일 스위스전이다. 축구 단일팀 트레이너였던 최만희(53) 부산 아이파크(프로축구) 사장은 “외국인 감독이 남북 정서를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을 테니 한국 코치가 가교 역할을 해서 하루라도 빨리 선수들이 서로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했다. 아이스하키 대표팀 사령탑인 새러 머리(30) 감독은 캐나다, 레베카 룩제거(28) 골리 코치는 미국 출신이고 김도윤(38) 코치만 한국인이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코칭스태프가 선수를 기용할 때 정치적 입김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점이다. 1991년에도 선수 기용에 외부 압력은 크게 없었다. 단일팀은 세계청소년대회에서 8강에 올라 총 4경기를 치렀는데 베스트11은 ‘북6+남5’가 두 번, ‘남6+북5’가 두 번으로 공평했다. 최 사장은 “일부러 맞춘 건 아니다. 양 팀 실력 차가 크지 않고 수비는 남한, 공격은 북한이 강해 자연스럽게 그리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브라질과 8강전 때 조금 갈등이 있었다. 북한 쪽에서 고위 관계자가 왔다는 이유로 북한 출신 공격수를 몇 명 더 투입하길 원했고 단일팀은 1-5로 크게 패했다. 최 사장은 ”브라질이 강하기도 했지만 멤버 구성이 평소와 달라 갑자기 무너진 경향도 있었다“고 기억했다.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은 머리 감독이 전권을 쥔다. 그러나 머리 감독은 “나에게 북한 선수를 기용하라는 압박은 없었으면 한다”는 뼈 있는 말을 남겼다. 아이스하키 관계자는 “단일팀의 상징성을 이유로 북한 선수에게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줘야 한다는 식의 정치 논리가 작용하면 어렵게 출범한 ‘단일팀’이 완전히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계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