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옷의 역사를 둘러싼 이설(異說)은 많지만, 기능적으로 특화한 속옷이 등장한 것은 서구의 경우 대략 중세 무렵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나마도 보편화한 건 아니어서, 갖춰 입는 계층이 제한적이었고 조선시대의 속속곳이나 박서(Boxer)처럼 얇고 헐렁한 속바지 형태였다. 끈 달린 패드 형태의 ‘다리속곳’ 같은 옷이 있긴 했지만, 그 역시 극히 일부에 국한된 유별난 문화였을 것이다. 헐렁한 속옷은 긴 내복 특히 상하의가 붙은 유니언 수트를 입던 사람들에겐 급하게 용변을 볼 때 상당한 장애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속옷은 19세기 말 이후 근대적 의미의 위생, 활동 편의의 필요와 더불어 보편화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브리프(Briefs)’라 불리는 몸에 밀착된 형태의 삼각팬티가 1935년 1월 19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먀샬 필즈(Marshall Field’s) 백화점에 처음 등장했다. 백화점 측은 비록 속옷이라고는 하지만 천 조각 같은 옷을 쇼윈도에 내놓기엔 부적절하다고 여겼다고 한다.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에 따르면 그날 날씨도 춥고 바람도 거셌다. 하지만 브리프는 재고 600벌이 출시 당일 매진됐고, 석 달 사이 무려 3만 벌이나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그 옷은 양말과 속옷을 만들던 위스콘신주 쿠퍼스(Coopers)라는 회사의 경영자 겸 디자이너 아서 크나이블러(Arthur Kneibler)의 작품이었다. 그는 한 해 전 프랑스 리비에라 해안을 여행하던 친구의 엽서 사진 속 일광욕을 즐기는 한 남성이 짧고 몸에 밀착된 비키니 수영복 같은 옷을 입은 데서 착안, 다리가 달리지 않은 전면 Y자 형태의 속옷을 디자인했다. 운동 선수들이 착용하는 국부보호대(Jockstrap)에 빗대 그 속옷에 단 이름이 ‘자키(Jockey)’였고, 자키의 대성공으로 71년 쿠퍼사는 회사 이름을 자키로 바꿨다.
근년에 유행하는 박서 브리프(Boxer-briefs)나 길이가 짧은 트렁크(Trunks)는 90년대 등장한 디자인으로 박서의 형태와 브리프의 밀착성을 결합한 것이다. 브리프의 원형 격인 작스트랩이나 더 극단적으로 옷감을 아낀 끈 팬티 스트링스(Strings)는 더 나중에 등장했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그 디자인을 고전적 혹은 복고풍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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