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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63세 아쿠타가와상

입력
2018.01.18 16:3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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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주부였던 박완서씨는 40세가 되어서야 작가로 데뷔했다. 요즘은 늦깎이 등단이 드물지 않지만 그가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된 1970년만 해도 장안의 화제가 될 일이었다. 게다가 당선작 ‘나목(裸木)’은 그가 처음 써본 소설이다. 기자가 집으로 찾아가 당신이 썼다는 걸 증명하라고 요구해 집필 메모를 보여주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나이 들어 글 쓰는 게 부끄러워 4녀 1남 아이들이 학교 가거나 잠든 뒤 틈틈이 쓴 ‘나목’ 이후 그는 40년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왕성한 창작욕을 과시했고 펴낸 작품마다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일본 대표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수상자로 최근 63세의 와카타케 지사코(若竹千佐子)가 선정됐다. 2013년 구로다 나쓰코(黑田夏子ㆍ당시 75세)에는 미치지 못하나 역대 두 번째 고령인데다, 지난해 데뷔 작품으로 단숨에 일본 대표 소설가 반열에 오른 이례적 수상이다. 일본 동북부 이와테 출신인 작가는 어릴 적부터 “직업부인”이 되라는 소리를 듣고 컸다. 그 말대로 대학 졸업 후 잠깐 기간제교사로 있다 결혼해 도쿄로 이주한 뒤 주부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다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마음에 그가 제대로 소설을 쓰겠다고 작정한 건 55세 때다.

▦남편을 보내고 황망해 하던 그에게 아들이 소설강좌를 들어보는 게 어떠냐고 권한 게 계기였다. 수상작 ‘나는 나 혼자서 갈랍니다’는 24세에 상경해 주부로 살아온 74세 여성 모모코가 주인공이다. 남편과 사별한 뒤 혼자 당당히 살아가는 여성의 삶을 풍성한 동북 사투리로 엮어냈다고 한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여성이 마지막 시간에 만끽하는 자유와 개운함, 할머니의 철학을 그리고 싶었다”며 “청춘소설과 정반대편의 현동(玄冬)소설”이라고 했다. 출판사는 ‘현동소설’을 “나이 드는 게 나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풀이한다.

▦작가는 기자회견에서 “사람은 늘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여도 떠밀려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며 “자신의 바람이 무엇인지 그것을 찾아내는 데 사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이어 “(소설)주제를 정하는데 63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소설의 신’이 기다려주었다”며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늦은 때란 없다는 걸 실감한다”고 했다. 곧 타계 7주기를 맞는 박완서씨가 데뷔 전 힘든 시기를 겪으며 “이걸 잊지 말고 기억해 언젠가 쓰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던 이야기가 겹친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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